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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스타일’, ‘블랙핑크’, ‘BTS’, ‘기생충’, ‘오징어게임’.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 쉽게 머릿속에 떠올린 그것이 정답일 것이다. 새로운 기록을 써 내려간 한류 콘텐츠. 그 기원은 불분명하지만 대체로 1997년 <사랑이 뭐길래>가 중국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것을 한류의 시작으로 본다면, 한류는 벌써 삼십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성장하고 발전하면서 오늘날 글로벌 문화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전 세계 수많은 팬의 취향을 저격하여 문화 공동체를 만들어내고, 문화산업으로서 세계 시장에서 선전(善戰)하며 생산 유발액 기준 총 37조 원에 이르는 경제적 효과도 내고 있다(한국경제연구원, 2023). 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의 한류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한국에 대한 호감으로도 이어진다. 2022년 조사에 따르면, 한국 문화콘텐츠 경험 후 긍정적으로 인식하게 되었다는 해외 응답자 비율은 60%에 이른다(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2023). 이는 이제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소프트 파워(Soft power)라는 개념 측면에서 보아도 고무적이다.


한류는 짧지 않은 시간 성장을 거듭하고 문화적, 경제적 성과는 물론, 국력으로 전환될 수 있는 잠재력이 되었다는 점에서 우리의 자부심이 되어가고 있다. ‘한류’보다 나이가 어린 20대들은 좀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적어도 나를 비롯한 기성세대들은 때론 과도한 언론 보도에 오글거림을 참지 못해 ‘국뽕’이라고 자조하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신기함과 뿌듯함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연구자로서 고민도 크다. 한류 초창기부터 한류의 인기를 실감하지 못해 나온 “이러다 말 것”이라는 불안 때문은 아니다. 이제 한류는 그런 걱정을 할 단계도 아니거니와, 문화라는 것 자체가 성공을 계획할 수도, 사그라들 것을 우려하여 대비책을 마련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모든 것엔 ‘빛과 그림자’가 있기에, 한류가 만들어내는 ‘빛’이 더욱 찬란하기를 바라지만, ‘빛’이 밝아질수록 ‘그림자’도 자꾸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아서이다.


이미 십수 년 전부터 청소년들로 구성된 K-pop ‘아이돌 노동자’에 대한 인권 보장과 공정한 계약의 필요성이 지적되어 왔지만, 전향적으로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독립 제작사 PD, 웹툰 작가, 스타일리스트 등 노동집약적인 문화콘텐츠 산업에 참여하는 인재들에 대한 부당한 대우, 그들이 처한 열악한 노동환경은 여전하다. 최근 하이브(HYBE)와 어도어(ADOR) 간에 발생한 분쟁은 ‘돈’ 문제가 가장 큰 쟁점이지만, 그 과정에서 불거진 아일릿의 뉴진스 표절 논란, 뉴진스의 해외 그룹 표절 의혹은 그간 종종 마주쳤던 한국 대중 문화의 표절 문제의 연장선에 있다는 점에서 더 답답함을 느끼게 한다. 이렇게 한류 콘텐츠 생산 과정에서 누적된 문제들도 문제지만, 한류 콘텐츠 자체가 갖는 한계들도 적지 않다. 몇몇 K-pop 그룹의 뮤직비디오나 K-drama에서 나타난 인종, 종교, 민족 등에 기반한 차별적 표현은 해당 집단의 구성원이 아닌 사람이 보아도 눈살을 찌푸리게 하거나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 최근 BBC의 다큐멘터리로 다시 회자한 버닝썬 스캔들은 한류 콘텐츠로서 ‘한류 스타’의 비도덕성을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다. 이 정도 규모의 사건은 일부 소수의 문제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한류 스타들이 학폭이나 마약 문제도 심심치 않게 되풀이되는 것을 보면 조마조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다른 나라의 대중 문화라고 저런 문제가 없겠냐고 반박한다면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류가 지속적으로 글로벌 문화로서 문화 공동체의 공감을 끌어내고, 문화산업으로서 성장하며, 소프트 파워의 원천이 되길 원한다면 인류 보편적 가치에 부합하는, 아니 적어도 그에 어긋나는 부분들은 줄여나가야 하는 고민이 필요하다. 한류의 성공을 이야기할 때 여러 전문가가 공통으로 입 모아 말하는 것이 한류 콘텐츠가 담고 있는 ‘보편적 가치’이다. 글로벌 한류 팬들은 한류 콘텐츠의 즐거움과 재미만 소비하는 것은 아니다. 한류 콘텐츠에 담겨 있는 공동체 의식, 정(情)을 통해 힘을 얻고 위로받아 왔다. 현대사회의 문제에 대한 비판적 지적에 공감하였고, 한국인들의 성실한 노력과 성공, 도덕성에 박수를 보냈다.


한류가 갑자기 앞에 지적한 문제가 있는 행태를 보인 것도 아니지 않느냐는 지적을 해도 할 말은 없다. 왜 지금 이런 문제들을 가지고 그러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 사이도 그러하지 않은가. 친해질수록 속속들이 알게 되고, 민낯이 드러나는 법. 이제 한류는 전 세계 많은 이들의 친한 친구가 되고 있다. 민낯이 드러날 때가 된 것이다. 이제라도 화려한 성장에 가려 미뤄두었던 문제들을 들여다본다면 겉과 속이 같은 모습으로 진정 오랜 친구가 될 기회가 아닐까.


신문방송학과 최지선 교수('한류'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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