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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시작 이후 이야기는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고대 동굴벽화는 사냥에 실패한 원시인들이 배를 쫄쫄 굶으며 내일의 사냥을 성공적으로 이뤄내자는 다짐이었을 것이고 지금까지 전해져 오는 구전동화는 아마 그 재밌는 얘기를 자기네들만 알기에는 지나치게 재밌어서 후손들에게까지 전해주려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2024년 한국의 출산율이 0.65명이라고 하니 언젠가는 인류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며 그래도 AI 들이 인류가 남는 이야기들을 기록하고 보존해서 인류는 끝내 이 세상을 떠나게 돼도 이야기는 남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한국의 저출산을 분석한 여러 글은 그 원인을 자녀의 교육환경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한국 사회에 작용하는 경쟁심리와 과잉과 사회적 압력 등을 꼽는다. 하지만 단연 압도적인 이유로는 자녀 양육의 경제적 부담이라는 글들이 많다. 즉, 저출산의 원인은 다름이 아니라 부부에게 돈이 부족해서라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혼외 자녀 출산율이 극히 낮은 한국의 경우 어쩌면 출산율을 논하기에 앞서 혼인율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한국노동연구원에서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한국의 혼인율 하락의 이유로 외환위기 이후 급증한 고용 불안정성이 소득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그 결과 젊은 남녀의 결혼을 제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 마련 비용의 상승은 결혼 비용을 증가시킴에 따라 결혼 참여를 어렵게 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또한 실업의 증가는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논문은 크게 세 가지로 한국 혼인율 하락을 분석했지만, 요약하자면 결혼을 하기에 많은 사람은 아직 돈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이 자본주의라는 발판에 두 발을 딛고 살아간다. 어떠한 삶을 살더라도 보통의 현대인에게는 하루를 살아가는 데 최소한의 경비가 필요하다. 하루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경비 이상의 돈을 벌어야지 저축도 하고 투자도 가능해진다. 결혼과 출산에 따르는 경비가 얼마나 필요한지는 사람마다 제각각 다르겠지만 어찌 됐든 우리는 모두 일정 부분 이상의 돈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안에서 최대한의 자본을 얻기 위해 하루 24시간을 보내는 것이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소위 말하는 ‘쓸데없는 것’에 시간을 보낸다. 카페에서는 쓸데없는 수다가 넘쳐나고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유튜브, 틱톡 등의 영상 시청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한다. 코로나 이후 극장을 찾는 관객이 뜸해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천만 관객 이상을 모이는 영화는 계속 나오고 있고 극장을 찾는 것보다 많은 관객은 집에서도 이동하는 지하철 안에서도 OTT 서비스 속에는 수만 편의 영화와 방송을 즐기고 있다. 한국 웹툰 시장은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하고 있고 한국 웹소설의 시장 규모는 작년 1조 원을 넘겼다고 한다.


어쩌면 돈이 최우선인 사회 속에서 돈만을 바라보며 사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정답일 수 있겠지만 우리의 삶은 보통 그렇지 않다. 이야기는 여러 삶의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서 살 수 있는 우리의 삶을 확장해 줄 수 있고 이야기에 감정이입을 하다 보면 나와 전혀 동떨어진 삶을 사는 사람을 공감할 수 있게 만든다. 또한 과거의 이야기가 현재에 유효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나를 짓누르는 현재의 고민과 번뇌도 과거의 누군가가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설명하기 힘든 마음의 편안함마저 찾아온다.


한국 성인의 독서율(교과서, 참고서 등을 제외한 일반 도서를 1년간 1권 이상 읽는 비율)은 47.5%에 불과하다고 한다. 2023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 따르면, 2022년 9월부터 2023년 8월까지 성인 10명 중 약 6명이 1년간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것으로 나타날 만큼 한국 성인의 독서율을 처참하다. 그렇다고 이야기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디오북, 영화, 드라마, 웹툰, 웹소설 등으로 이야기는 포맷을 옮겨가며 오히려 더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사람들은 기꺼이 이 이야기에 돈을 지불하고 빠져든다.


인간은 원래 논리보다는 이야기를 이해하도록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야기는 지친 삶의 위안이 되기도 하며 과거의 작가가 현재의 독자에게 타임머신에 태워 보낸 선물이기도 하다. 쓸데없다고 치부될 수 있는 이야기에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힘을 얻기도 한다. 어쩌면 쓸데없는 것은 어쩌면 하나도 없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글을 마친다. 


아트앤테크놀로지학과 안성호 교수('The Art of Storytelling'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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