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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보도에 대해 공정성을 특별히 더 요구하는 이유는 방송은 희소한 공적 자원인 전파 등을 사용하는 데다가 감성에 호소하는 매체 특성으로 인해 여론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세계 여러 나라가 방송의 공정성을 위해 규제나 감시 장치를 두고 있으며, 과거 독재정권 시절 방송의 편파 보도를 경험했던 우리나라는 훨씬 더 강력한 제도를 도입했다. 즉, 일상적으로 방송의 공정성을 들여다보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통심위)뿐 아니라 선거 때는 별도로 선거방송심의위원회(선방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그 통제 장치가 오작동하거나 공정하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 보도의 공정성에 관한 상식을 점검할 수 있는 2개의 언론 보도가 여기 있다. 두 사례 가운데 어느 것이 ‘선거와 관련해’ 공정성을 잃은 보도일까.


<사례 1>  3월 7일 ‘시사쇼 정치다’

: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경기도 수원 방문 영상이 프로그램 오프닝에 소개된 것을 시작으로 약 10분이 지날 때까지 한 위원장의 지원 활동이 두 차례 자세하게 보도됐다. 이후에도 한 위원장의 각종 발언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다가 19분쯤부터 27분까지 약 8분 동안 아예 한 위원장이 수원의 한 시장에서 지지자 및 유권자를 만나는 모습을 생중계하는 영상을 내보냈다. 반면에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이날 경기도 양평을 방문해 선거 지원을 한 소식은 프로그램 후반인 1시간 12분쯤에 가서야 나오며, 관련 영상은 채 1분도 안 됐다.


<사례 2>  라디오 1월 29일 ‘김종배의 시선집중’

: 사법농단 혐의로 기소됐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심 재판에서 무죄를 받은 것과 관련해 사법농단 의혹을 최초로 세상에 알렸던 이탄희 민주당 의원을 전화로 연결해 인터뷰했다. 판사 출신인 이 의원은 1심의 무죄 판결에 법리적으로 또 상식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 등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김종배의 시선집중’은 이처럼 매일 매일 우리 사회의 주요 현안이나 쟁점 2~3가지를 다루면서 관련자를 인터뷰한다.


아마 당신은 틀림없이 <사례 1>을 불공정 보도로 꼽을 것이다. 여야 대표의 총선 지원 활동을 보도하면서 내용은 차치하고 방송 시간을 이처럼 현격히 차이 나게 배정하는 자체가 형평성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여길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당신은 선거 방송의 공정성을 점검하는 선방위 위원으로서는 실격이다.


선방위는 최근 <사례 2>를 선거 보도의 공정성을 해친 방송으로 판정하고, 법정 제재인 ‘관계자 징계’를 결정했다. 선방위는 ‘<사례 2>가 어떻게 선거 보도에 해당하느냐’는 MBC 관계자의 항변을 묵살하고, ‘판결 당사자에 해당하는 야당 의원만 인터뷰했기에 불공정하다’는 민원인의 손을 들어줬다. 참고로 <사례 1>은 선방위의 심의 대상에조차 오르지 않았다.


선방위는 지난 4개월 동안 80여 건을 심의해 15건에 대해 법정 제재를 했으며, 이 중 9건은 징계 수위가 높은 관계자 징계였다. 지난 15년간 관계자 징계가 2건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이번 선방위의 ‘활약’을 알 수 있다. 올해 선거 방송이 과거에 비해 현저하게 불공정하고 편파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선방위가 그러한 것들을 정확하게 가려내 징계하고 있다면 제재 건수가 폭발적으로 는 것을 오히려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선방위의 심의 내용이나 징계 사안을 들여다보면 법적 독립기구인 선방위가 왜 있어야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그동안 있었던 15건의 법정 제재 중 10건은 <사례 2>처럼 선거와는 직접 관련이 없는 것들이다. 예를 들어 <평화방송>의 ‘김혜영의 뉴스공감’이 법정 제재인 주의를 받은 이유는 윤석열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을 비판적으로 논평했다는 점이다. 또, ‘김건희 여사 특검법’이라고 하지 않고 ‘김건희 특검법’이라고 불렀다는 이유로 <SBS>의 ‘편상욱의 뉴스브리핑’에 대해서는 행정지도인 권고가 내려졌다.


이러한 논란은 선방위에 그치지 않는다. 일상적 기구인 방통심위 역시 과잉 심의, 편파 심의 시비에 휩싸여 있다. <MBC>의 ‘바이든/날리면’ 보도와 관련해 류희림 방통심위 위원장의 동생과 아들, 지인 및 그 가족 등이 민원을 제기한 뒤 이를 심의 대상으로 올려 징계한 ‘청부 민원’ 의혹까지 일고 있다.


선방위나 방통심위가 내리는 제재는 종류에 따라 1점에서 10점까지 벌점을 주며, 방송 재허가나 재승인 때 평가 점수에 고스란히 마이너스 반영된다. 방송사는 위축될 수밖에 없고, 표현의 자유와 언론 자유도 그만큼 위협받게 된다. 심의의 칼을 지나치게 휘두르면 권력 감시와 공론 형성이라는 언론 본연의 기능을 억압하는 결과가 된다. 민주주의를 확대하기 위해 만든 기구가 자칫 민주주의를 후퇴시킬 수 있다. 특히 선방위는 외국에서는 유례를 찾기 힘든 독특한 기구다. 선거 방송을 감독하는 선방위가 국제 언론학계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지 궁금하다.


신문방송학과 김종철 교수('한국언론사'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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