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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지구적인 기후변화와 생태계 파괴에 맞서 선두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독일은 일본의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전국의 원자력 발전소를 모두 폐기했고, 2045년까지 단계적으로 화석연료 사용을 감소시켜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목표량을 책정했으며, 재생할 수 있는 에너지의 확대에 매진하는 등 급진적 친환경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지구 곳곳에선 넘쳐나는 물질적 풍요를 주체하지 못한 자본주의 사회의 소비자들이 여전히 매일 수천만 톤의 쓰레기를 배출하고 있는 가운데 독일은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 독일이지만 더욱 놀라운 일이 연일 벌어지고 있다. 한 떼의 젊은이들이 공항로에서, 고속도로에서, 거리에서 접착제로 손을 길바닥에 붙인 채 자기 몸을 볼모로 삼아 교통을 방해하거나, 베를린의 연방 총리 청사, 독일 사회민주당 건물 또는 브란덴부르거 토어 등에 물감을 뿌리거나, 유수 전시장에 걸린 모네와 고흐의 그림에 감자 반죽을 던지고 전시장 벽에 접착제로 손을 붙인 채 꼿꼿이 저항하는 모습들이 뉴스를 타고 전파됐다. 이 운동의 주체는 독일의 기후정책에 불만을 품은 급진적 환경운동단체 ‘마지막 세대 Die letzte Generation’의 회원들이다. 이들의 데모가 사회에 큰 불편과 피해를 속출한 탓에 독일 사회에서도 지지율이 그다지 높지는 않다. 그러나 ‘마지막 세대’의 몸부림은 단순히 정책만으로는 더 이상 전 지구적 재앙이 된 환경오염과 기후변화의 문제를 풀 수 없다는 청년세대의 깊은 위기의식을 표출하고 있다. 이들의 몸짓은 사회 곳곳에서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보다 적극적인 사회구성원들의 참여와 실천을 촉구하고자 한다.


오늘날 기후 문제로 구체화한 지구환경의 파괴는 오래된 자연과 인간의 착종 관계에 원인이 있다.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진행된 서구의 문명화 과정은 ‘인간에 의한 자연의 착취 과정’이었다. 그 결과 오늘날 급기야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지구’라는 의미에서 ‘인류세 Anthropozän’이라는 새로운 지질학적 개념까지 탄생하였다. 1980~2000년 동안 독일 마인츠의 막스 플랑크 연구소장이었으며 1995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네덜란드 출신의 대기과학자 파울 크루첸이 정립한 ‘인류세’ 개념은 기후변화와 생태계 변화에 끼친 인간 문명에 대한 자기 비판적 성찰을 오롯이 담고 있다. 오늘날의 기후변화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기후’라는 인류세 의식은 우리 삶의 전제인 자연환경에 더욱 깊은 주의를 돌리고 착취와 착종으로 치달은 자연과의 관계를 반성하게 한다.


그런데 독일 문학사에서는 이 착종된 자연과의 관계를 주제로 삼은 문학작품들이 인류세 논의가 있기 훨씬 전부터 발표돼 왔다. ‘생태 문학’, ‘환경 문학’, ‘녹색 문학’으로 불리며 별로 주목을 받지는 못했던 이 문학 장르는 최근 특히 영미권에서 새로 부상하여 인기를 끌고 있는 ‘기후 문학’의 선구자들이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다양하게 성찰한 이 독일 환경 문학의 전통은 따지고 보면 18세기의 ‘자연 문학’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미 18세기 독일의 사상가 헤르더는 그때까지 자연적 사태로 간주하던 기후풍토를 인간과의 관계에서 고찰하여 ‘인류학적 기후풍토론’을 제시한 바 있다. 이후 지난 250년간 독일 문학은 인간과 자연의 문제적 관계를 인류문명의 사각지대로서 주제화하며 문명의 어두운 곳을 조명해 왔다. 계몽주의와 더불어 자연에 대한 착취가 시작되자 노발리스와 루드비리 티크 등 독일 낭만주의 작가들은 작품을 통해 이 약탈 행위를 비판하며 인간의 집이자 고향으로서 자연과의 관계 회복을 주장했다. 이런 소위 인류세 글쓰기는 여행 문학에서도 실천됐다. 19세기 초 5년간 미국을 탐험한 알렉산더 폰 훔볼트의 여행기,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쿡 선장의 2차 세계 일주 항해에 참여했던 자연 연구자 게오르그 포르스터의 여행기들은 당시 유럽의 식민지나 탐험지를 대상으로 진행된 ‘인간에 의한 자연 착취와 생태계의 변화’를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후 19세기 중반 독일 사실주의 작가들은 땅과 농지가 공장과 주거지역으로 개간, 확대되고 교통 시스템이 확장되어 자연 파괴가 가속화되는 과정을 문학적으로 주제화했다. 오늘날의 환경 문학 및 기후 문학은 이런 착종 관계의 파괴 정도를 공공연하게 노출하며 미래를 디스토피아적으로 제시한다. 인간과 자연의 착종이라는 불편하지만, 중요한 주제를 표출하고 성찰하는 플랫폼으로서 문학의 역할은 오늘날의 인류세 논의와 더불어 더욱 중요해졌다고 하겠다. 그러나 인류세 글쓰기가 지향하는 목표는 ‘마지막 세대’의 환경운동과 마찬가지로 단 하나로 요약될 것이다. 목전에 닥친 지구적 차원의 재앙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지금이라도 각 개인이 각자의 삶 속에서 환경운동을 실천하자는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유럽문화학과 김연신 교수('독일낭만주의문학'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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