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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구성원이 자신의 성역할을 배우고 익히는 첫 장은 가정이다. 그것의 평균적인 상을 그려보면 반복적이고 단순하며 자질구레하다고 생각하는 가사를 도맡아 하는 엄마, 직장에서의 고단함을 이유로 퇴근 후 휴식을 취하는 아빠, 옆에서 눈치를 보며 엄마를 돕는 딸, 아빠처럼 휴식을 취하는 아들로 요약된다. 통계를 굳이 살피지 않더라도 여성은 직장이 있어도 퇴근 후 가사를 맡는 경우가 많다. 세태가 변해 이런 모습이 현세대는 많이 바뀌지 않았을지 학생들과 의논을 나누다 보면, 이러한 모습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한 모습을 보고 청년세대가 전통적인 성역할과 얼마나 고군분투하고 있는지 확인하곤 한다.


사회 제반 분야에서 1호, 첫, 최초, 여성이라는 타이틀의 기사를 드물게 발견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수의 여성이 제반 영역에서 일하고 있다. 많은 여성이 남성과 마찬가지로 노동, 직업이라는 것이 생계 수단일 뿐만 아니라 개인의 잠재력을 실현하는 장임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가정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또한 여성 노동은 사사로운 개인의 선택 문제를 넘어서서 사회 발전 측면에서도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럼에도 여성 노동에는 무언가 석연치 않은 논리와 어려움이 있다. 집안일을 아주 조금 하면서도 대단히 많은 일을 한다고(도와준다고) 착각하는 남편, 그런 남편에게 집안일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감정노동을 하기가 더 힘들어 자신이 직접 집안일을 해버리는 아내, 그리고 임금노동의 장에서 여성들이 봉착하는 크고 작은 어려움에는, 여성의 일은 남성의 일보다 언제나 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가부장적 차별이 내재하여 있다.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임금 노동의 경우에도 여성은 노골적인 임금 격차, 유리천장, 성적 괴롭힘 등의 어려움에 직면한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임금이 낮게 책정되고, 혹은 임금이 낮은 돌봄노동과 같은 노동에 (수평적으로) 분리되어 있으며, 같은 직종이라도 남성은 고위직에 여성은 그보다 낮은 지위에서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비정규직의 비율도 여성이 높다. 사실 직장 내 승진에서 보이지 않는 장벽으로 유리천장이 다뤄지지만 취업 자체의 진입 장벽도 무시할 수 없다. 리더의 자리에 여성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성별 고정관념, 직장 내 남성중심적 문화 등을 원인으로 하는 유리천장의 문제점들은 두말할 것이 없다. 


개인, 직장/조직, 사회에서의 숙고가 필요하다. 완벽한 이유는 아닐지라도 일을 통한 자아 성취, 직장 구하기, 그리고 안정적으로 직장 생활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비혼을 선택하고 있다. 청년세대에 더욱 열심히 노력하라는 말로, 성취를 논하기에는 깊게 뿌리 잡은 가부장적 현실을 조금 더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몇 주 전 수업 시간에 야망이라는 주제가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S가 여성은 아주 많은 야망이 있어서 아주 높은 허들(장벽)이 있고 그것을 간신히 넘어 성취해도 크게 치하를 받지 않지만, 남성은 그러저러한 야망으로도 그렇게 높지 않은 허들을 넘어 조금씩 성취를 이루어 가고 큰 치하를 받는 것 같다고 했다(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의미는 그렇다). <미생>이라는 드라마의 안영이라는 여성 주인공이 떠올랐다. <미생>은 장그래라는 고졸 출신의 천재적 바둑기사의 직장생활을 다룬 드라마인데 유능한 안영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 드라마에는 고졸과 대졸, 정규직과 비정규직, 낙하산과 공채, 심지어 내부고발 등 많은 사안을 담고 있었는데, 눈에 들어오는 부분이 하나 더 있었다. 안영이의 무결점. 그 드라마에서 드문 여성 중 한 명인 그의 준수한 외모, 탁월한 업무 순발력과 뚝심, 몇 개 국어를 하는 언어 실력, 독립심 등 직장인으로서 흠잡을 만한 부분이 없었다. 반면 남성 동료들의 경우는 실력, 외모, 성격 등에서 인간군상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었다. 덜 완벽한 일하는 여성들이 더 많아지고 편하게 수용되는 사회가 지금보다 훨씬 더 안정적인 사회일 것이다. 또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마리 퀴리의 남편들처럼 아내의 일을 자기 일처럼 여기고 상생하는 남성 파트너들이 많아질수록 잠재력을 키우는 여성들이 더욱 많아질 것이다. 자신을 표현하고 잠재력을 키우는 일의 중요성은 여성과 남성을 가리지 않는다.


전인교육원 김미덕 교수 ('여성과 일'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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