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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란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철학자들은 늘 ‘모든 것이 추구하는 목표’를 행복이라고 불러왔다. 칸트 역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이성적이지만 유한한 존재자라면 누구나 필연적으로 행복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행복은 이 존재자의 욕구 능력을 불가피하게 규정하는 근거다.’ 그렇지만 이러한 행복에 대한 정의에는 늘 불확정성이 따라다닌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행복’이라는 명칭은 누구나 동의하겠지만 행복이 과연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고 덧붙인다. 칸트 역시 마찬가지다. ‘불행하게도 행복이라는 개념은 너무나 불확정적이어서 사람들은 저마다 행복에 이르기를 소망하지만, 자신이 참으로 무엇을 소망하고 바라는지 확실하게 그리고 일관되게 주장할 수조차 없다.’ 우리는 행복을 행복이라고 부르며 그것을 소망하면서도 무엇을 소망하는지 알고 있지는 않은 것이다.


 문제는 그러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보다도 ‘좀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만 던지며 산다는 것이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긍정심리학이나 행복경제학 같은 것들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묻게 만드는 질문이 바로 그러한 것이다. 본래 정신 질환을 치료하기 위한 이론으로 시작한 심리학이 인간의 불안이나 착란, 편집증 등 부정적 정신 현상에 주목했다면, 긍정심리학은 이를 보다 확장하여 인간의 긍정적 정신 현상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긍정심리학은 인간의 부정적인 감정들보다는 긍정적 행복을 가져오는 원인을 설명하고자 하는데, 이는 곧 이 학문이 긍정적인 행복을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컨대 삶에 대해서 긍정적인 측면을 볼 줄 아는 태도, 높은 자존감 등 자신의 기분을 잘 유도하는 기술을 습득하여 습관을 들이면 지속적인 행복의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마틴 셀리그먼은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이 길을 따라가면 당신은 쾌락과 만족이라는 전원지대를 통과해, 힘과 덕이라는 고지대를 지나, 마침내 성취의 최고봉, 즉 삶의 의미와 목적에 이르게 된다.’ 무엇이 진정한 행복이고 왜 우리 모두가 그 길을 따라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보다는 이미 작은 행복 또는 불행이라는 진단을 통해 길 위에 들어선 이들을 위한 이정표만이 있는 것이다.


 행복에 영향을 주는 경제적 결정 요인들을 연구하는 행복경제학 역시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이에 대한 답은 결코 불확정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리처드 레이어드는 ‘행복이란 기분이 좋다는 느낌이고, 고통이란 기분이 나쁘다는 느낌’이며, ‘대부분 사람들이 자신이 얼마나 기분 좋은지 쉽게 말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그들이 행하는 행복 리서치는 누구든지 자신의 감정을 투명하게 알 수 있고, 또 그만큼 리서치에 순수하고 단순하게 반영된다고 전제한다. 그렇지만 행복 리서치는 정말로 투명하게 우리의 기분을 반영하게 하는가? 어떤 연구에 따르면, 자신의 현재 삶에서 긍정적인 측면을 생각하도록 유도된 실험 대상자들은 부정적인 질문을 받은 대상자들보다 자기 삶에 더 만족하고 행복하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행복 리서치가 완전한 투명성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은 환상에 가까울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보다 먼저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다른 사람들의 감정과 행복을 쉽게 특정한 상태라고 전제하며, 그 상태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들을 제공하기 이전에,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물어야 하는 것이다. 보부아르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행복이란 말의 의미를 잘 모르며, 그 말이 의미하는 진정한 가치는 더더욱 모르고 있다. 타인의 행복을 가늠하기란 전혀 가능하지 않고, 타인에게 강요하려는 상황이 행복한 것이라고 선언하는 것은 언제나 쉽다.’ 행복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스스로 묻고 그에 대해 답해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늘 강요된 행복을 바삐 좇아가는 일만을 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여기’의 처방과는 다른 질문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해야만 한다. 그리고 대부분 철학자들은 이 질문에 이러저러한 답을 제공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스스로 행복의 질문을 하고 답을 찾지 않으면 행복이라 불리는 것을 가져도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철학자들과 함께 일방적이지 않은 질문들을 던져보는 일은 손쉽게 행복을 얻게 해주지 않을지는 몰라도, 행복을 잃어버리지 않게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전인교육원 강선형 교수 ('행복의 추구'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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