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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세기 동안 지구촌의 인구는 5배나 많아졌고, 평균수명도 2배 이상 늘어났다. 에너지 소비량도 8배나 늘어났고, 식량 생산량도 역사상 최대를 기록하고 있다. 프랑스 혁명으로 시작된 정치·사회적 민주화도 상당한 수준으로 달성됐다. 21세기의 인류가 역사상 가장 풍요롭고, 건강하고, 평등하고, 안전한 삶을 누리고 있는 것이 명백한 사실이다.


위험사회에 대한 우려


그런데 우리의 일반적인 인식은 정반대다. 많은 사람들이 ‘위험사회’(risk society)에 살고 있다고 믿는다. 굳이 독일의 울리히 벡이나 영국의 앤서니 기든스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누구나 그렇게 느끼고 있다고 한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졌지만, 정신적으로는 더욱 피폐한 삶을 살게 되었다는 지적이 놀라운 설득력을 발휘하고 있다.


특히 현대 과학·기술에 의한 인위적 위험이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다고 한다. 음주 운전자에 의한 자동차 사고, 묻지마 폭행·살인과 같은 흉악한 범죄, 대형 화재와 사고 등의 인위적 위험이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다. 기후 위기와 같은 전 지구적 환경 재앙도 심각하고, 지난 3년 동안 전 세계를 무겁게 짓눌렀던 코로나19 팬데믹과 같은 감염병도 더욱 잦아지고 있다.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위험이 더욱 강해지고, 양상도 복잡해지고 있다고 한다.


괴담이 판치는 사회


분명한 근거를 찾을 수 없는 가짜 뉴스와 가짜·유사(類似) 과학을 앞세운 엉터리 ‘괴담’에 의한 사회적 혼란도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엉터리 괴담은 국가·사회적 차원에서 심각한 혼란과 경제적 피해를 발생시킨다. 광우병 사태, 성주 전자파 참외 괴담, 천성산 도룡농 괴담, 밀양 송전탄 논란, 세월호 침몰 사고, 탈원전 괴담 등이 그런 경우다. 현재 심각하게 진행 중인 후쿠시마 오염수 괴담도 어민·수산업자·요식업자의 생계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소비자의 건강과 재산을 위협하는 괴담도 넘쳐난다. 대부분 부당한 상업적 이익을 챙기기 위한 시도다. MSG 괴담, 전자파 유해론, 천일염 괴담이 대표적인 예다. 가짜·유사 과학을 앞세운 엉터리 마케팅 전략에 의한 혼란도 심각하다. 어떠한 근거도 찾을 수 없는 6각수·알칼리수·전해환원수·이온수·알파수·수소수·해양심층수도 있었고, 소비자에게 실질적인 피해를 발생시킨 음이온 공기청정기와 라돈 침대도 있었다. 천일염·죽염처럼 역사적·과학적 진실을 철저하게 왜곡해버린 사례도 있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도 가짜 과학이 만들어낸 참사였다.


과학정신을 생활화해야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과학·기술의 세기다. 근대 과학혁명 이후 빠르게 발전해온 현대 과학과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놀라운 수준으로 발달한 현대 기술이 인류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더 이상 거칠고 위험한 ‘야생’(野生)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어졌다. 맹수와 독충(毒蟲)의 공격과 굶주림·질병의 고통에서는 자유로워졌다. 


그렇다고 우리가 유토피아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분명한 과학적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엉터리 가짜·유사 과학을 앞세운 괴담이 풍요롭고, 건강한 삶을 누리고 있는 우리의 이성과 자존감을 위협하고 있다. 후쿠시마에서 방류한 방사성 핵종이 우리나라의 해역과 수산물을 위협한다는 후쿠시마 오염수 괴담이 그런 경우다. 초등학교 수준의 과학과 상식조차 갖추지 못한 자격미달의 원자력 전문가가 만들어낸 억지 괴담에 흔들리는 우리 사회의 현실은 절망적인 것이다.


1999년에 처음 개설된 ‘자연과 인간’은 괴담이 판을 치는 우리 사회에서 스스로의 이성과 자존감을 지킬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한 시도다. 역사적·학문적으로 어떠한 근거도 찾을 수 없는 행정편의주의적 ‘문·이과 구분 교육’으로 괴담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해버린 학생들을 위한 과목이다.


우리 삶의 터전인 ‘자연’과 우리 스스로에 대한 현대 과학적 이해를 소개하는 것이 핵심이다. 구체적인 과학 지식을 가르치는 대신 과학의 발달을 가능하게 만들어준 ‘과학정신’(scientific spirit)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현대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과학이 필요한 이유를 밝혀주는 것이 핵심이다. 언제나 ‘위험’을 수반할 수밖에 없는 ‘기술’의 사회적 수용성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도 포함된다. 과학과 기술이 악령(惡靈)이 춤추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를 지켜주는 희미한 등불이다.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천재 과학자 리처드 파인만이 남겨준 소중한 교훈이다.


화학과 이덕환 명예 교수 (‘자연과 인간’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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