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bvisual

생태 신학을 공부한 지 20여 년이 흘렀다. 생후 100일도 안 된 아픈 아기를 끌어안고 애면글면하면서, 그 원인이 환경 파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가 건강히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생태학의 세계로 들어선 나는 지구학자(Geologian)인 토마스 베리(가톨릭 예수고난회 사제)를 만났다. 그가 저술한 『우주 이야기』(브라이언 스윔 공저)와 『지구의 꿈』을 정독하며, 인류가 이제는 유아기와 아동기를 거친 성인으로서 지구생태계를 보전하고 생태 문명을 이루어 가야 함을 확인하였다.


환경운동의 이론적 대부였던 베리는 심층 생태학자 아느 네스, 생태신학자 매슈 폭스 등 수많은 학자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고, 그의 제자들은 현재 미국 전역에서 탄탄히 연대하고 있다. 폭스는 베리를 가리켜 “모든 종교인을 인간중심주의의 굴레에서 해방하게 해 우주론과 생태학이라는 땅으로 인도한 새로운 모세”라고 칭했다. 베리가 현대 사회를 움직이는 정치·기업·대학·종교에 깔린 인간중심주의와 과학기술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데서 벗어나 생명중심주의에 기초한 생태대(Ecozoic Era)로 나아가도록 촉구했기 때문이다.


베리가 쓴 『우주 이야기』에는 세 시기로 나뉜 인간 이야기가 나온다. 첫 시기는 인간 역사의 시작부터 농업혁명까지다. 지구에 출현한 인간이 생물학적으로 진화한 ‘유아기’다. 이때 인간은 지구의 뭇 생명과 어우러져 살면서 친교를 나누었고, 지구 어머니를 존중하는 영적 의식을 펼쳤다. 두 번째 시기는 1만 년 전 즈음부터 오늘날까지 다양한 문명을 이루며 성장한 ‘청년기’다. 이때 인류는 농업혁명과 동물 가축화, 촌락 및 도시 건설과 가부장제라는 문화적 진화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가부장제의 발전은 여성 신을 남성 신으로 대체했고, 지구의 황폐화를 초래했다. 세 번째 시기는 새천년으로 이어지는 ‘성년기’다. 새로운 창조 이야기가 등장하는 마당에, 성인이 된 우리 인간은 울고 있는 어머니 지구를 책임지라는 요청을 받고 있다. 어른스럽게 지구생태계를 약탈하지 않고 돌보겠다는 마음가짐과 행동거지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구 생명공동체를 파괴해 온 신생대(Cenozoic Era)의 습성을 버리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코로나 팬데믹과 가차 없는 자연재해 소식을 부쩍 접하면서도, 땅과 바다 깊은 곳에 묻힌 천연자원은 무한정 뽑아 쓸 수 있을 것이고 과학기술의 계속된 발달로 승승장구할 수 있으리라 믿는 듯하다. 


그러나 베리는 더 이상 지구 약탈에 열을 올리는 신생대의 자본주의적 사고방식과 버리는 문화를 벗어버리고 지구와 전체 생명체의 건강함과 온전함을 회복시키는 데 힘을 모아보자고 제안하였다. 그렇게 할 때 지구공동체 구성원의 친교를 바탕으로 황폐해진 지구를 치유하는 생태 문명, 곧 생태대를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베리는 어떻게 ‘우주 이야기’를 만들었을까? 융합과 통합을 통해서다. 그는 ‘우주 이야기’에서 물리학·생물학·지질학 등 여러 과학의 연구성과를 통합하고 인문학적 성찰을 융합한다. 동시에 ‘과학적 우주론’과 ‘종교적 우주론’을 통합하고, 우주의 역사, 지구의 역사, 인류의 역사도 통합한다. 이로써 계절의 순환으로 경험되는 ‘질서정연한’ 우주론에서 ‘발생하고 있는’ 우주, ‘시간에 따라 비가역적으로 진화하는’ 시간 의식적 우주론으로 나아갔다.


이것은 문명사회를 발전시켜 오면서 인간에만 집중한 폐쇄적인 세월을 거슬러서 되돌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인류 문명은 공동체적 자아, 즉 행성 지구와 우리의 더 큰 자아를 구성하는 전체 자연 질서와 인간 사이의 관계를 무시하면서 개별적인 자아를 발전시켜 왔기 때문이다.


‘우주 이야기’는 이제 인간 중심적 언어를 탈피하여 지구 중심적 언어와 우주 중심적 비전을 창조적으로 펼치도록 도와준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늦었다고 느낄 때가 가장 빠르다고 하니 우리를 둘러싼 비인간 언어에 귀 기울여 보자. 시인과 예술가와 영성가들만 즐겨온 산의 언어, 강의 언어, 나무의 언어, 새들과 동물들과 곤충들의 언어뿐 아니라 하늘에 떠 있는 구름과 별들의 언어를 배우면서 많은 생명체와 소통하고 어울려 보자.


이로써 우리는 자신의 초라함과 우울함과 무기력감을 증폭시키는 숨 막히고 고립된 ‘작은 방’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우리는 세상의 모든 존재와 ‘우정’의 친밀함 안에 있기에 분리될 수 없음을 기분 좋게 감지할 것이다. 토마스 베리는 이것이야말로 어른이 된 우리가 ‘생태대’에 성취할 수 있는 가장 온전한 자아실현, 곧 우주적 자아라고 알려준다.


전인교육원 유정원 교수 ('생명윤리' 강의)

첨부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