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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안 미로, <태양 앞의 인물들과 개>, 1949, 캔버스에 템페라, 55×81cm, 스위스 바젤미술관


공감의 기능은 우리 안에 있다. 공감은 계발되기도 하지만 애초에 우리 안에 장착된 요소이다. 안타까운 일을 당한 사람 앞에서 나도 모르게 탄식이 흘러나오고 흐뭇한 장면을 보면 내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손가락을 베어서 아파하는 옆 사람을 보고 내 얼굴이 함께 찡그려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독일 심리학자 테오도르 립스는 공감이란 우리가 선천적으로 갖고 태어나는 ‘본능’이라고 했다. 


타인의 감정은 내게로 전이된다. 정확한 전개 과정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오늘날의 자기공명영상(MRI) 연구에 의하면, 타인이나 동물의 고통을 지켜볼 때 활성화되는 뇌 영역은 나 자신의 고통을 경험할 때 활성화되는 뇌 영역과 유사하다. 거울 같은 특정한 뇌세포가 타인의 감정을 모방해 느끼는 것이다. 중요한 축구 경기를 관람하면서 아주 극적인 순간에 응원하는 선수의 킥을 따라 내 다리근육이 움찔거리는 경험을 누구든 해봤을 것이다. 이미 몸의 반응이 일어나고 대상의 감정이 내게로 전이된다. 이런 감정적 일치화는 구성원 간의 유대감을 강화한다. 


비인간 동물도 공감할 줄 안다. 동물이 공감하지 못한다면 그 종은 종족보존에서 실패했을 것이다. 공감 덕분에 위험에서 안전을 확보하고 공생하며 번식한다. 소유권에서 엄격한 침팬지도 구걸하듯 손을 뻗으며 칭얼대는 없는 녀석에게 먹이를 차지한 녀석은 자기 것을 나누어준다. 같은 종 사이에서뿐 아니라 서로 다른 종간에서도 공감이 작용한다. 동물행동학자 뱅시안 데스프레는 인간과 동물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동물이 지적인 반응을 발전시킨다는 사실을 밝혔다. 포유류는 물론 닭 같은 조류도 친절함, 속임수, 이타심, 슬픔을 드러내 보이며 심지어 외상후스트레스장애로 고통을 받기도 한다. 실제로 가축이나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자주 경험하는 사실이기 때문에 다른 종 사이의 공감을 증명하는 게 오히려 무색할 정도이다. 


‘지구가 아프다’라는 말 만큼 우리의 공감력을 우리 스스로 잘 알고 있는 표현도 없다. 같이 아파할 수 있는 우리의 공감 능력을 전제하므로 우리는 지구처럼 커다란 행성의 고통을 느낄 뿐만 아니라 고통을 제거하기 위해 행동에 나설 수 있게 된다. 지구가 파헤쳐지고 불에 타면 우리도 직감적으로 아프다. 우리가 지구를 나와 분리해 생각하지 않고 일치화하기에 공감이 촉진된다. 


공감기능이 훼손되면 물론 대상의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공감의 왜곡이나 부재는 오늘날의 모방범죄나 혐오문화로 나타난다. 부정적인 감정도 전염된다. 누군가가 사회적 혐오를 쏟아내면 다른 사람도 따라서 반응하기 쉽다. 사회적 분위기나 흐름을 자세히 살펴보면 얼마나 사람이 연결되어 있는지, 공감이 서로를 지탱하는 힘인지를 역으로 알 수 있다. 그러니 내 안의 공감력이 잘 발휘되도록 살펴야 한다. 긍정적인 공감이 파도를 일으킨다면 그 사회는 큰 잠재력을 지닐 것이다. 

 

나를 둘러싼 존재의 감정에 공감할수록 나는 강하다. 그래서 우리는 예술을 영위한다. 예술작품이 우리가 타고난 감각을 명민하게 일깨우고 공감을 섬세하게 확장하며 건강하게 발휘되도록 이끄는 수단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예술은 우리에게 상상력도 제공한다. 


첨부된 그림은 스페인 초현실주의 화가 호안 미로(Joan Miro´, 1893~1983)의 <태양 앞의 두 인물과 개>라는 추상화 작품이다. 빨간 태양 아래 단순한 선의 별이 빛나고, 그 옆으로 빨강 파랑 검정 노랑 초록으로 구성된 사람과 동물이 조화롭게 산책한다. 평화로운 분위기에 우리는 동화된다. 자 우리에게 공감능력이 있다면 두 사람과 두 강아지를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전인교육원 김숙영 교수 ('서양 미술의 역사와 감상'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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