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bvisual

코로나19가 급속도로 가속화되면서, 우리는 영화관에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영화를 찾지 않았을까? 그에 대한 답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아니다’ 기존에 있었던 넷플릭스를 비롯한 티빙, 애플티비, 디즈니 티비 등 수많은 OTT 플랫폼이 늘어나면서 더 많은 영화가, 더 다양한 드라마가 쏟아졌다. 우리가 방 안에 갇혀있는 순간, 우후죽순으로 이야기들은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비대면, 단절의 시대에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 이야기들과 함께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이유로 이야기들과 함께하려고 하는 걸까? 자세히 보면, 이야기들은 항상 문제를 담고 있다. 가정 문제, 연애 문제, 친구 문제, 폭력 문제 등 다양한 문제들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에 대한 해결 방향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 삶의 문제와 해결 방안을 우리 삶에 적용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야기를 향유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알다시피 학교폭력이 일어났을 때, <더 글로리>를 본다고 해서 ‘문동은’처럼 실제로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런데 문학치료학의 창시자 ‘정운채(1955~2013)’는 이야기에 ‘시뮬레이션 기능’이 있다고 언급한다. 시뮬레이션이란 현실의 상황을 가상으로 모의 재현하는 기능을 말한다. 우리가 학교폭력의 문제 상황을 직접 해결하지 못했더라도, 관련 이야기를 감상하고 공유함으로써 그 문제 상황의 해결 방안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의 뇌는 이야기를 보거나 들으면, 그것을 가짜로 만들어 낸 이야기, 그러니까 허구라고 인식하는 것이 아닌, 진짜 상황으로 인식한다고 많은 뇌 연구소에서 보고하고 있다. 우리가 공포영화를 보거나 스릴러를 볼 때, 연애 이야기를 보거나 들을 때, 우리의 뇌는 그 이야기 속의 문제 상황이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처럼 반응하고, 해결 과정까지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다트머스 뇌 연구소에서 또한 관련 실험을 통해 영화를 보는 내내 스크린의 모든 감정에 피험자가 전염된다고 보고한 바 있다. 


태초에 세상이 만들어진 이유를 전하고자 하는 신화의 시대, 민중들이 자신의 문제 상황을 담아내는 민담의 시대, 전문 작가진이 글로 창작한 소설의 시대, 화려한 영상으로 담아내고 있는 스크린의 시대, 매체는 바뀌어도 인류 보편의 문제를 담고 있는 이야기는 전승되고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이야기 안에서 우리 인생의 보편 문제 상황과 문제 해결 방안을 보여주고 있다. 이야기는 우리가 인생의 모든 상황을 경험할 수 없기에 신이 준 선물일 수도 있고, 인생의 어려운 상황을 대비하도록 준 선조들의 마음일 수도 있다. 그에 따라 이야기는 인생의 고비를 잘 경험하고, 감당하여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안내해 주는 안내서이다. 그리고 인생에 상처가 있더라도 새살이 솔솔 날 수 있도록 해 주는 빨간약이다. 


전인교육원 김혜미 교수 ('치유서사창작론' 강의)


그렇다면 우리는 다양한 문제 상황에 해당하는 빨간약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인생의 길에는 자기 경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많은 슬픔과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 그때마다 고통으로 인하여 주저앉게 된다면, 인생의 참된 의미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양한 문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이야기를 자기 안에 가지고 있어야 한다. 물론 문제 상황을 해결해 주는 이야기를 지속해 향유하는 것이 문제 해결을 가능하게 하도록 시뮬레이션할 수는 있지만, 더 적극적으로, 단시일 내에 문제 해결을 시뮬레이션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은 ‘창작’이다. 창작은 그 어떤 방안보다도 이야기를 ‘내면화’하여 내 것으로 만드는 기능을 한다. 내가 내 말로 정리하여 직접 쓴다면, 치유의 방안을 직접 창작한다면, 그 활동으로 인하여 이야기는 내면에 각인 되고, 이야기를 시뮬레이션하게 되면서 치유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여러분이 인간 세상의 문제들이 어떤 형태로 나타나고, 해결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면, 이야기를 감상하고 향유하라. 그런데 내 인생의 핵심적 문제를 적극적으로 시뮬레이션하고 싶다면? 창작하라. 그것이 치유를 가능하게 하는 최적화된 길이 될 것이다. 


첨부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