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bvisual

현대 대학의 전통은 서양 중세 12~13세기 파리와 볼로냐에 등장한 교육 조직에서 유래한다. 학부, 교육과정, 시험, 졸업, 학위 수여를 포함한 초기 대학 체계는 다양한 학과, 도서관, 실험실, 박물관, 자산, 건물 등을 포함한 현대 대학교로 발전했다. 이렇게 대학 제도는 양적으로 다양한 변화를 겪었지만, 대학의 이념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대학은 14세기 영국 시인 제프리 초서의 말대로 ‘기꺼이 배우고 기꺼이 가르치려는’ 대학생들과 교수들의 공동체로서 살아 움직이는 제도다. 대학 본연의 과업은 학자들을 양성하고 학문 탐구의 전통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이다. 대학교에서 학문 전통의 핵심은 객관적 진리 탐구다. 


현재 대학교는 사회의 유지와 발전에 필요한 다양한 분야의 인재들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이기도 하다. 대학교에서 학생들은 각자 선택한 다양한 분야의 전공 지식을 쌓고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는다. 그런 다음 교수나 교사, 민간 기업과 공기업, 연구소의 직원이나 자영업자로서 살아간다. 하지만 대학교는 대학생들과 교수들이 자유롭게 학문을 탐구하는 곳, 사회 현실과 세계에 대해 비판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자유롭게 토론하며 객관적 진리를 탐구하는 곳, 사회 문제를 합리적으로 공정하게 해결할 기초를 닦는 곳이다. 


객관적 진리란 무엇인가?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허위와 진리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없는 것에 대해 그것이 있다고 말하거나 있는 것에 대해 그것이 없다고 말함은 거짓이다. 반면에 있는 것에 대해 그것이 있다고 말하고 없는 것에 대해 그것이 없다고 말함은 참이다.”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물의 존재 방식을 옳게 이해함, 곧 정확성이라는 뜻의 진리 개념에 관심을 가졌다. 실제로 벌어진 사태, 상황, 사실을 옳게 정확히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모순에 빠지지 않으면서 객관적 진리를 얻을 수 있다. 


대학교를 졸업했든 아니든 직종의 차이를 막론하고, 우리는 대부분 사회적 존재로서 각자 정신력과 체력이 합쳐진 노동으로 특정 조직에 필요한 일을 하거나 재화를 생산한 대가로 돈을 벌고 생계를 꾸려나간다는 점에서 노동자다. 최근 대한민국의 현직 대통령이 주당 69시간 노동 허용 방침을 언급했다가 얼버무린 적이 있다. 이를 언급한 당사자는 노동자들의 현실도 경영자들의 현실도 옳게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비현실적 판단을 했고, 많은 국민의 비판을 받았다. 특정 제조업 분야의 일부 생산직 노동자들에 대해 주당 69시간 노동 허용 방침을 언급한 것이 더 큰 문제다. 대학생들이라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통령의 직무가 무엇인지, 현직 대통령의 노동관이 적절한지를 평가하고 비판할 수 있어야 하며, 열악한 노동 조건을 개선하려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한지에 대해 자신의 관점이 드러난 주장과 근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사실상 경제적으로 어떤 계급에도 속하지 않는 대학생들은, 어떤 사상이든 자유롭게 토론하는 가운데 사회 문제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객관적 진리를 추구하면서 새로운 학문 전통을 세울 주체들이다. 대학교 안에서 정치적 성향의 차이에 따른 대립, 예컨대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대립은 대학생들이 현재와 미래 세대에 적절한 사회적 가치를 스스로 세우고 공유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대립하는 양측이 갈등을 빚는 핵심 논점을 드러내 치열하게 토론하고, 합의점이나 절충점을 찾아내야 극단주의의 폐해를 예방하고 대처할 수 있다. 


2022년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젊은 유권자들의 투표 결과는 성별에 따른 정치 성향의 확연한 차이를 보여주었다. 실제로 일어난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객관적 진리를 얻는 지름길이다. 현실 민주주의에서 모든 사회 구성원이 자신이 속한 경제적 계급이나 계층을 명확히 의식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대변할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은 아니다. 21대 국회의원들이 신고한 재산의 평균액이 국민 평균 재산의 5배 이상이라고 한다. 부유한 국회의원이 진심으로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할 것인지 의문이 생길 만도 하다. 부자들이 정치를 하는 이유가 자신의 이익인지 공익인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유권자들이 공익을 실현할 후보가 누구인지 선택하기는 더욱 어렵다. 


그래도 어떤 사상이든 논할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가 보장될 때 우리는 모두 시행착오를 거쳐 배우면서 객관적 진리를 얻을 수 있다. 민주적 절차에 따라 세워진 정권이라도 대다수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지 못하는 경우, 자격 없는 정권을 전복할 권리까지도 국민에게 허용하는 정치제도가 민주주의다. 이것이 우리가 몸담고 사는 사회에 대한 객관적 진리다. 대학의 이념은 과거에 그랬듯 현재에도 객관적 진리 탐구이며, 미래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따라서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전공 분야의 지식을 쌓는 동시에 우리 사회에서 불공정한 계급 차별이 묵인되는 현실을 직시하고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해결책도 찾아내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전인교육원 서상복 교수 ('논리와 비판적 사고' 강의)


첨부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