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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민주당 역사에서 대선을 제외한 최악의 패배를 꼽으라면 남녀평등 헌법수정안 (Equal Rights Amendment, ERA) 통과 실패가 1~2등에 오를 것이다. 때는 1970년대. 베트남전 반전운동을 거치며 여성해방, 인권운동 등이 부쩍 성장했기에 남녀평등 헌법수정안 역시 상·하원에서 너끈히 통과됐다. 이제 주별 단위로 비준만 남은 상태.


그러나 결과는 패배였다. 주 단위 싸움에서 보수 우파 여성 필리스 슐라플리(Phyllis Schlafly) 등의 막강한 조직력과 가짜뉴스까지 동원한 선전전에 ERA는 참담하게 무너졌다. 미국 여성계는 오늘날까지 이 패배에서 회복하지 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구 선진국 중 유일하게 출산 휴가가 없는 나라. 공공 보육 시스템의 전무와 여전한 남녀 임금 격차 등이 이를 증명한다.


그렇다면 왜 ERA는 실패했을까? 하버드 케네디스쿨 정치학자 제인 맨스브리지 (Jane Mansbridge)는 60년대 학생운동이 뜨겁던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 살며 지역의 다양한 공동체에 몸담았다. 환경운동 단체, 생협, 육아 조합, 대부분 몰락했다. 그런데 이런 망한 공동체들 사이 보인 유사점이 있었다. 구성원들 모두의 권력이 똑같이 평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조직을 압도했다는 점이다. 반면 소수의 성공한 공동체들은 달랐다. 일부 구성원이 더 많은 힘을 갖고 있었지만, 사익이 아닌 공통의 비전과 목표 실행에 권력을 행사하며 헌신했다.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동시에 상반되는 이해관계를 조율해야 하는 숙명을 가진 민주주의. 정치이론가인 맨스브리지는 갈등을 강조하는 “대결 민주주의” (adversarial democracy) 못지않게 공동체의 이익을 찾아내고 강조하는 “통합 민주주의” (unitary democracy) 역시 중요하고, 시기와 환경에 따라 양자를 적절히 결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졸업 때 인생 최고의 영예인 “제인 맨스브리지 논문상”을 수상한 나에게 맨스브리지 선생님의 가르침은 인생의 나침반이 되었다.


다시 남녀평등 헌법 수정안로 돌아가서, 왜 민주당은 다 차려놓은 상에서 밥을 떠먹지 못했을까? 맨스브리지 교수는 저서 <왜 우리는 ERA를 놓쳤는가> (Why We Lost the ERA) 에서 비슷한 생각을 하며 거품 속에 갇혀 사는 “끼리끼리” 문화를 가장 큰 이유로 꼽는다. 인터넷이나 소셜미디어가 생기기 한참 전이지만 그 시절에도 정치세력의 보상 기전과 정치활동의 고단함 등으로 인해 다른 진영의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만나더라도 제대로 이야기를 경청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네 조직 내부의 역학에 맞서 싸우라. 반대편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것은 결국 현실감의 상실이라는 결과를 낳는다. 만나고, 대화하고, 경청하라”는 것이 맨스브리지 교수의 주문이다.


저널리즘, 커뮤니케이션 학자인 나에게 맨스브리지 교수의 주문은 엄청난 숙제다. 나와 생각이 많이 다른 이들과 대화하기가 얼마나 힘든가. 설령 이야기한다고 할지라도 영혼을 교감하는 깊은 대화가 가능하기는 한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아낸버그 스쿨의 다이애나 머츠 (Diana Mutz) 교수는 저서 <다른 쪽 이야기 듣기> (Hearing the Other Side)를 통해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가진 이들과 대화하며 생각이 바뀌기는커녕, 기존의 아집(그리고 반발심!)이 강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양, 질적 데이터를 통해 증명한 바 있다.


밥상머리에서 정치 이야기를 삼가야 하는 한국, 나이와 성별, 학벌 등 진정한 대화를 방해하는 요소가 중첩된 사회에서 견해가 다른 이들과 제대로 된 대화란 얼마나 어려운가. 엄혹한 세상, 하지만 오늘도 우리는 강의실에서 토의민주주의와 공론장으로서의 언론, 민주사회에서 학교의 역할을 논하며 밤하늘의 별을 따러 떠난다.


신문방송학과 서수민 교수 ('저널리즘 윤리'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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