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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연상되는 것을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경쟁’ 혹은 ‘시험’이라고 답한다. 그리고 이내 걱정과 불안의 느낌으로 이어진다. ‘교육’과 ‘경쟁’은 본질적으로 지향하는 논리 자체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교육의 세계가 경쟁 체제를 대표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피라미드식 권력과 지위의 구조에서 보다 우위를 점하기 위한 개인 간의 경쟁은 학교에서의 성적 경쟁에 투영되어 우열의 비교, 선택과 배제 등을 부추겨왔다. 끊임없이 타인을 경쟁 상대로 간주하도록 만드는 학교의 생태적 구조는 인간에게 근본적으로 협력에 대한 소양과 욕구가 있다는 것 마저 깨닫지 못하게 가로막는 형국이다.


경쟁의 상황은 ‘적대적 상호의존관계’의 특징을 지닌다. ‘경쟁의 프레임’으로 보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은 모든 다른 사람은 각자의 성공에 잠재적 장애물이라는 것이다. 상대방이 실패하지 않으면 내가 성공할 수 없도록 운명지어진 관계이기 때문이다. 경쟁이 지배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학교체제에서 중요한 것은 ‘이기는 것’이지 개개인의 교육적 성장이 아니다. 수량적 시험 점수로 개인의 능력을 드러낼 수 있다고 믿게 하고 광적인 수준의 비합리적인 경쟁을 강요함으로써 경쟁을 미화하고 영속시키고 있으며, 경쟁에 가장 적합한 기질을 길러내고 있다. 개별 학생의 시험 점수가 가장 잘 예측하는 것은 그의 창의성이나 탐구력, 행복 등이 아니라, 그의 ‘이후의 시험 점수’이다. 


사실상 측정가능한 성과들은 학습에서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결과들이다. 경쟁함으로써 더욱 수량화에 의존하게 되고, 셀 수 있고 잴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학교 구성원들은 모두 ‘단조로운 정신상태’를 가지게 된다. 경쟁 중심 학교체제는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지를 들여다 볼 필요도 여유도 없도록 만드는 괴력을 가지고 있다. 초중등학교는 물론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경쟁을 기반으로 작동해 온 학교체제는 여러 측면에서 학생들의 정신과 행동을 지배함으로써 학교에서의 ‘교육’ 기능을 억압해 왔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전 생애에 편재되어 있는 교육적 체험의 본질과 가치에 대한 바른 이해를 방해하고 있다. 교육의 세계는 경쟁의 논리로는 포착될 수 없는 전혀 다른 세계로, 그 특징을 몇 가지 들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교육의 세계는 한정된 지위나 재화 등을 두고 다투는 ‘zero-sum’ 게임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이득을 얻는 ‘positive-sum’ 게임의 특성을 지닌다. 즉 교육의 세계에서는 기본적으로 한정된 자원을 상정할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서로의 자원과 지평을 넓히는 데 주목한다.


둘째, 교육의 세계는 기본적으로 인간 간의 ‘협력’을 기반으로 존재 가능한 세계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향상의 열정과 함께 타인의 수준 오름을 도우려는 열정도 함께 가지고 있으며, 교육적 관계는 이러한 열정을 기반으로 형성·유지된다. 최근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플랫폼 생태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자발적인 연결과 협력이 빚어내는 무한한 향연들은, 그 간 경쟁을 중심 원리로 삼아 진행되어온 교육관련 담론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오도하고 의미있는 대안을 상상할 수 있는 시야를 가로막아 왔는지를 성찰하게 한다. 


셋째, 교육의 세계에서 보는 인간의 능력은 단선적인 우열의 차이가 아니라 무한한 ‘복선적 교호관계’의 견지로 파악된다. 우수한 자와 열등한 자가 따로 규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다루는 문제의 성격과 참여하는 구성원들의 배경과 관심, 수준, 의도, 이해의 틀 등에 따라 맺게 되는 관계의 양상이 무한히 확장될 수 있는 것이다. 시인 A와 화가 B, 컴퓨터 프로그래머 C가 있다고 할 때, 이들의 능력은 단일한 차원의 우열의 논리로 포착될 수 없으며, 그들이 만나서 맺는 교육적 관계에서는 승자와 패자를 가리기 위해 경합할 이유가 없다. 서로가 원하는 방식으로 각자의 고유한 세계를 함께 나누고 서로의 성장을 도우면 되는 향연의 장인 것이다.


넷째, 교육의 세계는 그 과정 자체로서 의미가 있는 ‘내재적 가치’를 지니고 있어 특정한 결과적 성취를 얻기 위해 다투는 경쟁의 세계와는 다르다. 교육의 내재적 가치 체험은 자신의 한계를 초극하고 끊임없이 더 높은 실재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내적 열망을 실현함과 동시에, 다른 사람이 지닌 그러한 열정을 도우려는 양 방향으로 구현된다.


굴욕감이나 패배감, 처벌 등이 없는 안전한 곳일 때만 학생들은 혼동스러운 것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실수를 자유롭게 인정하게 된다. 도움을 청할 수 있을 때 그들은 향상할 수 있다. 한정된 자원을 두고 승패를 다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하고 연대함으로써 끊임없이 확장하고 새로움을 창출하는 것으로 시야를 돌려야 한다. 우리들의 신념과 가치관이 제도를 형성하고, 그 제도가 우리들의 신념과 가치관에 회귀된다. 모든 학생들로 하여금 동일한 목표와 규칙을 가진, 틀에 얽매인 활동을 통해 그저 서로를 패배시키거나 능가하는 일에만 열중하도록 내모는 경쟁 체제, 그것이 학생들에게 결코 이롭지 않다면, 과연 누구에게 좋은 것인가? 적어도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대학에서 이러한 관행이 지속되지는 않기를 희망한다.


교육문화연계전공 양미경 교수 ('교육방법및교육공학'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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