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bvisual


우리는 말할 줄 아는 마음(말하기 마음)을 타고나고 경험을 통해 말을 습득한다. 예를 들어 내가 지금 이렇게 글로 말하는 것은 타고난 말하기 마음을 바탕으로 다른 이들이 말하는 모습을 접했기 때문에 가능하다. 선천적 말하기 마음과 후천적 경험, 이 두 가지가 필요하므로 둘 중 어느 하나라도 결핍되면 말을 할 수 없다. 우리집 고양이가 아무리 똑똑해도 말을 하지 않는 것은 말하기 마음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의사소통과 관련된 나름의 야옹 마음은 타고난다. 야옹 마음과 말하기 마음이 서로 다를 뿐. 또 드물긴 하지만 인간 사회와 단절된 채 성장한 사람은 말하기 마음을 타고났어도 말하는 모습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말을 할 줄 모른다(늑대와 자란 카마라와 아마라, 가여운 지니 등). 


말하기 마음처럼 마음과 관련된 속성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이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의 속성 중 타고나는 것이 드물지만은 않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뱀에게 물린 적도 없으면서 뱀을 무서워하는데, 왜 그럴까? 경험에서 이유를 찾을 수 없으니 타고난다고 해야 한다. 무조건 악취를 꺼리고 낭떠러지를 무서워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것을 꺼리고 무서워 하는 마음을 타고난다. 그리고 마음과 관련된 속성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사람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거위는 알에서 부화하자마자 접하는 존재를 어미로 인식하는데, 이것도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이 아니다. 그냥 그렇게 정해져서 태어날 따름이다. 


그렇다면 말하기 마음의 구체적인 모습은 어떠한가? 일단 말을 하려면 말의 재료가 있어야 한다. 말의 재료를 어휘 항목이라고 하는데, 마음속에 어휘 항목이 저장되어 있다고 보고 어휘 항목이 저장된 마음의 부분을 마음 사전 혹은 어휘부(lexicon)라고 한다. 다음으로 재료인 어휘 항목을 결합해서 언어 표현을 만들어내는 결합 규칙이 있어야 한다. 


어휘부와 결합 규칙이 주어지면, 이제 다음과 같이 언어 표현을 만들 수 있다. 먼저, 어휘항목 선택. 예를 들어 여러 가지 어휘항목이 저장된 어휘부에서 ‘강아지, -도, -니, -었-, 짖-’을 선택한다. 다음으로, 결합 규칙 적용. 앞에서 선택한 어휘항목에 결합 규칙을 적용해 ‘강아지-도’와 ‘짖-었-니’를 만들고, 다시 결합 규칙을 적용해 ‘강아지-도 짖-었-니?’를 만든다. 


만들어진 언어 표현은 어휘부에 저장되기도 한다. ‘(생일에) 미역국을 먹었다’는 굳이 어휘부에 저장되지 않지만, ‘(시험에서) 미역국을 먹었다’는 어휘부에 저장되어야 한다. 앞의 것과 달리 뒤의 ‘미역국을 먹었다’는 불합격이라는 독특한 의미, 즉 언어 표현을 만드는 데 동원된 어휘항목 ‘미역, 국, -을, 먹-, -었-, -다’와 거리가 먼 독특한 의미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어휘부에 저장된 ‘(시험에서) 미역국을 먹었다’는 어휘부에 저장된 다른 것들, 예를 들어 ‘하늘’과 어휘부에 저장된다는 점에서 통한다. 그런데 ‘(시험에서) 미역국을 먹었다’와 ‘하늘’은 다른 모습도 보여준다. ‘하늘’은 중간에 뭔가를 삽입할 수도 없고 변화를 가할 수도 없는데, 그래서 ‘푸른 하늘’이라고 해야지 ‘하 푸른 늘’이라고 하면 안 되고, ‘하늘’을 ‘늘하’로 바꿀 수도 없는데, ‘(시험에서) 미역국을 먹었다’는 ‘(시험에서) 미역국을 네 번이나 먹었다’, ‘(시험에서) 네 번째 먹었다, 미역국을’에서 보듯이 삽입을 허용하고 약간 어색하지만 변화도 허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삽입과 변화를 허용하는 성질은 ‘(생일에) 미역국을 두 그릇 먹었다’, ‘(생일에) 두 그릇이나 먹었다, 미역국을’에서 보듯이 ‘(생일에) 미역국을 먹었다’의 성질이다.


결국 ‘(시험에서) 미역국을 먹었다’는 어휘부에 저장된 원초적 단위이자 어휘항목을 결합해 형성한 복합적 단위인 셈이다. … 원초성(primitiveness)과 복잡성(complexity)은 서로 모순인데 둘이 공존한다?! 이상해 보이지만, 자연(nature)으로 눈을 돌리면 이해의 실마리가 보인다. 예를 들어 계절의 순환을 참고하면, 먼저, 어휘부의 어휘항목이 결합해 복잡한 언어 표현이 되고, 복잡한 언어 표현이 다시 어휘부에 저장되는 것이 포착된다. 다음으로, 여기에 결합 규칙을 접목해 보자. ‘하늘’에는 결합 규칙을 적용해봤자 공전한다. 결합 규칙은 둘 이상이 있어야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험에서) 미역국을 먹었다’는 사정이 다르다. 결합 규칙의 관점에서 ‘미역국을’과 ‘먹었다’의 결합으로 이해되고, 나아가 ‘미역국’과 ‘-을’의 결합 그리고 ‘먹-’과 ‘-었-’과 ‘-다’의 결합으로 이해된다. 이에 어휘부에 저장된 ‘(시험에서) 미역국을 먹었다’는 결합 규칙의 시각에서 ‘(생일에) 미역국을 먹었다’와 마찬가지가 되고 이에 ‘(생일에) 미역국을 먹었다’처럼 삽입과 변화를 허용하게 된다.


정리하면, 우리는 어휘부와 결합 규칙으로 구성된 말하기 마음을 가지고 태어나며, 어휘부와 결합 규칙은 단순성과 복잡성의 공존을 보장한다. 첨언하면, 타고나는 것, 저장, 그리고 결합 규칙으로 마음을 이해하는 방법은 말하기 마음을 넘어 여타의 마음 속성에 대한 이해에도 유효하다. 더불어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자연에서 실마리를 구했는데 이는 마음의 법칙과 자연의 법칙이 통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물리적 현상을 설명하는 방정식으로 마음 현상을 설명할 수도 …. 진짜? 그러면 이타심의 방정식을 구할 수 있고, 나아가 이타심의 최적값을 공동체의 기준으로 설정할 수도 있겠네?! 변수를 조정해 가면서 방정식도 더 좋게 다듬을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민주주의를 잘 보완할 수도 있을 듯한데? … 다 함께 고민해 볼 일이다. 


국어국문학과 이정훈 교수 ('국어의문장구조' 강의)



첨부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