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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교수자, 교육의 소재, 학습자 사이의 의미 있는 상호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편지를 그 수신인에게 전달하는 우편집배원과 연극대본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연극배우의 모습은 교재의 내용을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교사의 모습과 겉으로 보기에 비슷하다. 그러나 우편집배원형 수업과 연극배우형 수업은 이 세 요소가 관련을 맺고 있는 방식에 있어서 근본적인 차이를 보인다.


먼저, 우편집배원이 편지의 내용에 소외되어 있듯이, 우편집배원형 교사는 다루고 있는 교재 내용에서 소외되어 있다. 그(녀)는 교재에 대한 철저한 이해 없이도 얼마든지 학생들 앞에서 교사 노릇을 할 수 있다. 교재 내용을 잘 요약해서 암기하기 쉽게 전달하여 시험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이런 수업에서도 때때로 학생들은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교육의 소재인 교과 자체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 때문이지 결코 그 교사가 그 내용을 잘 전달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이것은 마치 기쁜 소식을 담고 있는 편지를 받은 사람이 기뻐하고, 가까운 사람의 사망 소식을 전해 받은 사람이 슬퍼하는 것과 같다.


한편, 연극배우형 교사는 교재 내용의 전달에 있어서 우편집배원형 교사와는 사뭇 다른 방식을 취한다. 연극 대본을 이해하지 못한 채 앵무새처럼 지껄이는 연극배우는 관객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 연극배우는 자기의 배역이 극중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과 자기가 맡고 있는 부분이 전체 극의 주제와는 어떤 식으로 관련이 되어 있는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연극배우형 교사는 가르치고 있는 교과에 대한 이해를 위해 철저한 탐구 생활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수업은 교과에 대한 탐구 과정을 그들 앞에서 열정적으로 보여 주는 활동이다. 훌륭한 연극배우가 관객들을 사로잡듯이 연극배우형 교사는 학생들로 하여금 자기의 수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우편집배원과 편지의 수신자의 관계가 그렇듯이, 우편집배원형 수업에서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일방적이고 외면적이다. 전해질 편지의 내용을 우편집배원이 택하지 않았을 뿐더러 그 내용의 저자는 더더욱 아니다. 우편집배원은 편지를 전해 주면 그만이고 편지의 수신자는 받으면 그만이다. 우편집배원형 교사는 칠판과 분필에 의존하는 수업에서 탈피하여 여러가지 기자재들, 예컨대 OHP, PPT, SNS, 비디오 영상, 인터넷 등을 사용해서 수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그러나 교사가 교과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열정 없이 패키지로 되어 있는 내용을 단지 전달해 주는 수단으로 존재하는 한, 학생과의 관계는 여전히 일방적이고 외면적인 관계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연극배우형 교사의 경우는 다르다. 연극배우와 관객의 관계가 쌍방적이고 내면적인 것처럼 연극배우형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쌍방적이고 내면적이다. 관객의 반응은 다음 공연에 필히 환류되어 영향을 미친다. 수업은 교사와 학생이 함께 만드는 예술 작품이다. 연극배우형 교사는 자기가 가르치는 교과내용이 무서울 정도로 심각한 영향을 학생들에게 미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르치는 행위가 매우 조심스럽다. 그(녀)는 자기의 주관적 가치와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고 있지나 않은지 종종 반성한다.


끝으로, 학생과 교재의 관계를 우편집배원형 수업과 연극배우형 수업 안으로 들어가 비교해 보자. 우편집배원형 수업에서 학생들은 교재의 내용을 외워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한다. 대부분의 시간은 재미없는 편지글을 반복해서 읽고 외우는 데 보내진다. 단편적인 지식을 많이 암기하고서는 “오늘은 공부 많이 했다” 하며 스스로 포만감에 젖기도 한다. 학생들이 주로 교재에 기술된 내용을 외우도록 강화하는 것은 시험이 교재 안에서만 나오기 때문이다. 특히 객관식 시험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큰 중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로 하여금 각 교과가 제공하고 있는 세계에 대한 관점과 안목보다는 사소하고 단편적인 것에 귀를 기울이도록 한다. 심지어 뜻도 모르면서 외워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수학 과목조차 암기과목이라지. ㅠ) 이러한 학교생활이 반복되는 동안 학생들은 ‘공부란 지겨운 것, 하기 싫지만 꾹 참고 견뎌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기가 쉽다. 


한편, 연극배우형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교재의 내용을 기쁨을 주는 대상으로 인식한다. 관객들이 좋은 연극을 보면서 흥이 나듯이 학생들은 연극배우형 교사가 하는 연기를 보면 흥이 난다. (일부 학생들은 그 연극에 감동을 받아 나중에 연극배우가 될 꿈을 키우기도 한다.) 연극들이 저마다의 특성이 있고 다루는 주제가 다르듯이, 각 교과의 내용은 서로 다른 측면에서 학생들에게 자연, 인간, 그리고 사회를 보는 눈을 뜨게 만들어 준다. 따라서 연극배우형 교사에게 배우고 있는 학생들은 새로운 연극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수업시간이 기다려진다.


2년 넘도록 지속된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 거의 끝나간다.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는 아무래도 연극배우형 수업을 진행하기가 쉽지 않았다. 닫혔던 극장이 열리면서 연극배우가 관객을 만날 기대에 마음이 설레는 것처럼, 교실에서 학생들을 만나 연극배우형 수업을 하게 된 교사는 이제 살맛난다.


교육문화연계전공 김재웅 교수 ('교육학개론'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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