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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봄이다. 만물이 싹트고 약동하는 봄은 인생의 봄인 청춘과 동일시되어 “청춘은 봄” 혹은 “청춘의 봄”과 같은 표현들이 귀에 익다. 그러나 청춘이 봄처럼 항상 환대만 받아왔던 것은 아니다. 인간 생애의 주기로서 청춘은 우선 발견되고 재평가되어야 했다. 독일말로 유겐트Jugend는 청춘, 청(소)년을 일컫는다. 문화사적으로 독일에선 20세기 전환기에 이르러 비로소 이 청(소)년기가 고유하고 독립적인 인간의 성장기로서 발견되었다. 이 전환기에 독일 사회는 산업화와 도시화의 가속화 속에서 전통사회의 질서가 해체되고, 청소년 인구의 급증으로 사회가 젊어지던 단계에 있었다. 따라서 새로운 직업과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상에 맞게 교육 기간도 점차 늘어나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 사회 문제로 대두된 학생자살과 검은 교육에 대한 비판의식은 개화하기도 전에 시들어가는 젊은이들의 열악한 성장환경으로 눈길을 돌리게 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 청소년의 도보여행, 일명 “반더포겔운동”이 시작된다. 한 무리의 청소년들이 어른 없이 여러 날에 걸쳐 자연 속을 거닐며 캠핑과 캠프파이어를 하는 도보여행은 자연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통해 자연과의 조화와 자유를 체험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차후 이 도보여행은 학생들의 심신을 강화시키고자 했던 애초의 목적을 넘어 20세기 청소년문화운동에 중요한 견인차 역할을 하게 된다. 또한 당시 독일의 예술계와 건축 분야를 풍미한 예술사조 “유겐트 슈틸” 역시 “청년”이라는 시대정신의 탄생에 깊이 관여하였다. 무엇보다도 당대 문학 분야에서 쏟아져 나온 많은 학교소설과 세대소설은 청소년기의 발견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학교소설은 실제의 학생자살을 소재로 삼아 인생의 봄에 접어든 학생들의 새로운 자기이해와 정체성 추구가 기성세대의 권위와 무지, 완고한 교육관에 부딪혀 좌절되는 내용을 다루며 청(소)년에 대한 의식의 변화를 촉구했다. 독일 극작가 프란츠 베데킨트의 극작품 <봄의 눈뜸>(1891/1906), 헤르만 헤세의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1906)는 청소년기 주인공이 가정과 학교의 교육환경 속에서 고통받다가 파멸하는 비극적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 주제는 특히 아버지와 아들 간의 세대 갈등으로 전이되어 첨예화되기도 한다. 프란츠 카프카가 아버지에게 던지는 문학적 고소장으로 유명한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1909), 표현주의 작가 하젠클레버의 극작품 <아들>(1914) 등은 아버지로 대표되는 기성세대와 아들로 대표되는 청년세대 간의 힘의 대립과 갈등을 그린다. 이 문학들은 청소년기의 인간을 파멸로 이끄는 경직된 교육시스템, 청소년기에 대한 몰이해로 점철된 가족과 사회를 비판할 뿐 아니라, 바로 청(소)년기의 특징인 정체성의 위기와 새로운 정체성을 찾기 위한 성장통을 집중적으로 다룸으로써 청(소)년기의 중요성에 주목하였다. 특히 이 시대를 풍미한 표현주의 문학은 청년세대가 아버지 세대 및 기성 사회와 대립각을 세우며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자기를 주장하는 상징적 공간으로 활약하며 “청년”을 문화의 이상이자 시대정신으로 각인시키기에 이른다. 표현주의 사조에서 청소년기 문학이 대거 등장했다는 사실은 표현주의가 다름 아닌 청년에 의한, 청년을 위한, 청춘을 이상적 모델로 표방한 운동이었음을 보여준다. 기존의 보수적인 교육관에서 청(소)년기가 위험하고 병적이며 불안정한 상태로 저평가되었다면, 표현주의의 이념에서 청(소)년기는 더 이상 유년기에서 성년기로 넘어가는 무의미한 통과시기가 아니라, 중요하고도 독립적인 성장기로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다. 청(소)년기는 불완전하고 미성숙한 상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완전한 상태로 이해된다. “새로운 인간”, “새로운 삶”이라는 이상 아래 구시대의 인간상과 결별하고 더 나은 미래를 도래시킬 혁명과 갱신의 주체로서, 이제 창조적 에너지를 가진 청년이라는 형상은 역동과 변화에 찬 이 전환기의 시대정신을 각인한다. 이처럼 “청춘”은 발견되어야 했을 뿐 아니라 투쟁하고 힘들게 획득되어야만 했다. 1914년 8월에 일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많은 표현주의 작가들은 이 전쟁을 새로운 세계의 도래를 위한 전단계로서 이해하고 환영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유럽을 휩쓴 무의미하고 끔찍한 이 전쟁은 수많은 청춘을 파괴하였으며, 청년담론도 휴지기를 맞게 된다. 전쟁에서 체험된 비극적인 참상이 -불타는 도시, 세계의 몰락, 자기 상실, 비인간성의 고발, 공포와 불안-은 이후 표현주의 문학의 주요 주제로 등장한다.


유럽문화학과 김연신 교수 ('독일청소년문학'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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