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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는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학교생활뿐만 아니라 사람들간의 관계도 변화시켰고 종교활동, 경제활동 등 모든 것에 변화를 가져왔다. 이 가운데에서도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은 아마도 여행관련 산업일 것이다. 해외 입국이 불가능하거나 자가격리 등의 매우 제한적 여건으로 인해 여행산업은 그야말로 파산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러한 심각성은 단순히 경제적 차원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이는 여행이 단순한 오락적 행위가 아니라 자아의 내면을 되돌아보는 성찰적 행위라는 사실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여행을 통해 일상으로부터 일탈하고 낯선 시간과 공간을 경험하며 새로운 자아와 대면하고 자신의 삶을 일신한다. 이처럼 여행은 반복적인 일상의 억압으로부터 물러나 자신의 삶을 깊게 성찰할 수 있는 기회이다. 그래서 여행은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또 인간으로서 주어져야 할, 과하게 말하면, 필수적인 권리이기도 하다. 코로나로 인해 발생한 여행 불가능의 상황은 이러한 인간의 기본권이 박탈된 상태이니 경제적 타격만큼이나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가브리엘 마르셀(Gabriel Honore Marcel)은 인간을 Homo Viator로 정의한 바 있다. ‘여행하는 인간’으로 번역할 수 있는 이 말은 일상을 떠나 끊임없이 탐험을 위해 길을 떠나는 인간의 속성을 드러낸다. 사실, Homo Viator는 지리적 이동의 의미보다는 스스로 참된 존재를 찾아 나서는 인간의 속성을 강조한 말이다. 자신의 실존을 찾기 위해 끊임없는 내적 여행을 떠나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마르셀의 이러한 개념은 지리적 이동을 포함하는 여행행위와도 무관하지 않다. 


여행은 기본적으로 일상적인 시간과 공간을 벗어나는 행위다. 인간은 일상을 떠나 낯선 시공간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며 또 새로운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물론, 단순한 오락적 목적을 위해 떠나는 여행은 그 성찰 정도가 미미하겠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성찰적 효과를 주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여행이 주는 그 낯선 경험의 충격효과는 강하기 때문이다. 사실, 경계를 넘어가는 행위로서 여행은 일상적인 규율과, 윤리, 질서, 체제 등으로부터 해방됨을 의미한다. 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기존의 역할이 정지되는 그래서 전혀 새로운 존재로 변화됨을 의미한다. 


종교학적으로 본다면 이는 일종의 통과의례이다. 분리-전이-통합의 통과의례적 구조가 여행에 그대로 실현되고 있다는 말이다. 자신의 일상으로부터 분리되어 타국에 들어가는 행위는 일종의 전이과정이며 여행을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은 통합의 과정으로 이해된다. 여행은 국경이라는 경계를 넘어 낯선 곳에 들어가는 행위이며 거기서의 생활은 존재론적 전이가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이를 통해 변화된 자아는 다시 국경을 넘어 회귀함으로써 재통합되고 이전과는 다른 자아로서 이전의 일상을 일신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여행은 의도적으로 기존의 질서가 전복되는 리미널리티(liminality, 역치성)의 상태로 들어가고자 하는 행위이며 이를 통해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려고 하는 모험, 즉 영웅적 행위이기도 하다. 


여행의 이러한 의미는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 명징하게 나타난다. 전근대 사회에서의 여행은 거주지를 떠나 멀리 여행함으로써 실존적 의미를 추구하고자 하는 종교적 동기가 주된 목적이었다. 이때의 여행은 일상을 떠남으로써 육체적, 심리적 고행의 길을 걷는 것이고 이를 통해 자아의 완성에 도달하고자 하는 행위였다. 따라서 여행은 보다 성숙한 존재로의 성장을 도모하고 이를 통해 일상으로 통합됨으로써 자신의 일상을 일신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의미는 비단 전근대사회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이미 고대 그리스의 영웅서사 문학인 오디세이아는 이런 여행의 본질적 측면들을 잘 보여준다. 작품 속에서 오디세우스는 방랑여행을 통해 점차 영웅의 면모를 갖추어 나라고 끝내 고향으로 돌아가 새로운 존재로 통합되는 존재이다. 대부분의 영웅서사는 이러한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길가메시 서사시가 그렇고 이스라엘의 모세와 출애급도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심지어 그리스도교의 예수에 관한 서사도 그 궤를 같이 한다.


근대 이후 산업자본주의가 자리잡으면서 여행의 이러한 실존적 의미는 퇴색되기 시작한다.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조밀한 산업사회에서 대중화된 인민들에게 쉼이라는 것이 필요해졌고 여행은 그것의 일환으로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이른바 패키지여행으로 상징되는 집단여행이 일반적인 여행의 패턴이 되었고 따라서 여행의 성찰적 의미는 퇴색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최근의 여행 패러다임은 변화되고 있다. 단독여행, 자유여행 등으로 상징되는 진정성 추구 여행이 대세가 되고 있다는 말이다. 단순한 유흥이 아닌 내적 가치나 자아실현을 위한 여행, 즉 성찰적 성격을 가지는 여행에 대한 요구가 점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여행이 단순한 오락적 여가활동의 범주를 넘어 영적 가치를 추구하는 성찰행위로 전환되어 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사회문화적 변동과 무관하지 않다. 거기에는 존재론적 자아확인을 필요로 하는 시대적 요구가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종교학과 박현준 교수('종교와 세계문화'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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