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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르치는 대부분의 과목들은 대중문화를 통해 미국사회와 미국인들의 가치관 변화를 살펴본다. 이번 학기에 '미국 텔레비전'이라는 과목을 처음으로 가르치는데, 학기 전반부에 대표적인 시트콤(situation comedy)들을 분석하면서 이러한 변화를 살펴보고 있다. 시트콤은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웃으면서 볼 수 있는 TV 프로그램으로 1950년대부터 미국 TV의 대표적인 장르가 되었다. 특히 가족 시트콤은 가족에 대한 미국인들의 가치관의 변화를 보여주며, 역사적인 맥락에서 연구하면 인종, 계층, 젠더 등에 대한 인식의 변화도 볼 수 있다.


<Father Knows Best>는 1950년대 미국 가족의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Anderson 가족은 미국 중부의 small town에 거주하는 중산층 백인 가족이다. Jim은 보험 판매원으로 가족을 부양하고, Margaret은 집에서 아이 3명을 키운다. 가족 문제가 있으면 Jim이 해결하는 가부장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Jim이 항상 해결책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방황하는 모습이 관객의 웃음을 자아낸다. 즉, Jim이 “father knows best”라고 주장하지만 해답을 찾지 못하는 situation이 이 시트콤을 comedy로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이상적인 가족은 1960년대에 미국사회가 급변하면서 구시대적인 모습으로 여겨지게 된다. <The Brady Bunch>는 미국인들의 가족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변했는지 보여준다. 아들 3명을 가진 Mike가 딸 3명을 가진 Carol과 재혼하면서 이들은 'Brady bunch'라는 대가족이 된다. 이 'bunch'가 여러 갈등과 오해를 극복하는 과정이 웃음을 자아내면서 이들의 서로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또한, Anderson 가족과 Brady 가족의 차이에서 계층에 대한 인식의 변화도 볼 수 있다.


전형적인 중산층 주택에 사는 Anderson 가족과 달리 Brady 가족은 건축가인 Mike가 설계한 세련된 주택에 살고 있고, 집 앞에는 그의 고급 convertible 자동차가 주차되어 있다. 그리고 'Brady bunch'는 8명이 아니라 Mike의 가정부인 Alice를 포함해 9명이다. 이렇듯 1950년대 시트콤의 이상형은 더 전통적이고 더 서민적인 가족이었던 것이다.


1960년대까지는 시트콤에 백인 가족들만 등장하였다. 1970년대에는 <Good Times>에 Evans 가족이 등장하고, 1980년대에는 <The Cosby Show>에 Huxtable 가족이 등장한다. Evans 가족은 이전 시트콤들에 등장한 백인 가족과 달리 저소득 가족들을 위해 Chicago 시가 지은 housing project에 살고 있으며, 1편부터 월세를 못 내서 집을 잃을 뻔하는 심각한 경제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가족의 가치관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긍정적으로 그려진다. <The Cosby Show>는 이전 흑인 가족 시트콤에서 볼 수 없었던 가족을 소개한다. Cliff는 의사이고 Clair는 변호사다. 1편에서 공부를 못 하는 아들 Theo가 'regular people'처럼 살 거라고 하자 Cliff는 Theo가 부모의 돈 때문에 'regular people'의 삶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Good Times>가 미국사회의 불평등을 강조한다면, <The Cosby Show>는 미국이 인종과 상관없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land of opportunity'임을 강조한다.


<The Cosby Show>와 동시대에 인기를 얻었던 <Roseanne>은 Cliff가 비꼬는 'regular people'의 삶을 긍정적으로 그린다. Roseanne은 Wellman Plastics라는 회사의 공장에서 일하고, Dan은 건설 노동자인데 일이 없을 때가 많다. 1편에서 Roseanne은 공장 일 외에도 딸 Darlene의 선생님을 만나러 가는 등 바쁜 하루를 보내는 동안 Dan은 친구 Dwight와 맥주 마시면서 Roseanne이 부탁한 부엌 싱크대 수리도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둘이 싸우지만, 사실 Dan이 Dwight를 찾아간 이유는 Dwight가 지난번에도 일자리를 구해주었기 때문이다. 둘의 싸움은 Darlene이 손가락을 다치면서 끝난다. Darlene의 손가락에 붕대를 감는 동안 둘은 온 가족이 demolition derby를 보러 갔을 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Darlene이 통증을 잊게 만든다.


Demolition derby는 노동자 계층의 취향을 상징하며, 운동을 좋아하고 교실에는 답답해서 가만히 못 앉아있는 Darlene의 tomboy적인 성격을 보여준다. 이처럼 <Roseanne>은 계층뿐만 아니라 젠더 묘사에서도 기존 시트콤과 차별화된다. 주인공이 여성이고 Roseanne과 공장에서 같이 일하는 여성들의 우정이 핵심적으로 다루어진다는 점에서도 젠더 묘사의 변화를 볼 수 있다.


역사적인 맥락에서 대중문화를 연구하면 미국 사회와 정치의 변화과정을 배울 수 있다. 1950년대에 중산층 백인 가족이 미국적 가치관을 상징하였다면 1970년대에는 흑인 인권운동의 영향으로 인종차별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었다. 1980년대는 전통적인 가치관을 되살려야 한다는 Reagan의 시대이면서 인종차별을 강조하지 않는 'color-blind' 정책의 시대이기도 하다. 이 시대에 <Roseanne>은 <The Cosby Show>가 상징하는 Reaganism의 대안이 되었는데, 이러한 대안이 백인 가족이라는 점은 인종과 계층의 복합성을 부각한다. 대다수의 미국인들이 상상하는 노동자 계층의 모습은 백인 노동자다. 흑인 노동자는 많지만 demolition derby를 보러 가는 흑인 가족은 별로 없을 것이다.


미국문화전공 노재호 교수(‘미국 텔레비전’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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