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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임용소식을 듣고 만 10년의 미국생활을 뒤로 한 채 귀국하게 되었다. 당시 미국의 코로나19 상황이 좋지 않았기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탈출하다시피 귀국하였지만 미국생활이 그리워졌던 순간은 금세 다가왔다. 그것은 바로, 자가격리 기간 슈퍼볼(Super Bowl) 경기가 진행되는데, 국내에서는 경기를 시청할 방도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전에는 티비채널을 틀면 손쉽게 볼 수 있던 경기를, 국내에서는 공중파는커녕 케이블에서조차 볼 수 없는 상황에 당황하며 스트리밍 사이트들을 헤맸다.


코로나19로 많은 프로 스포츠들이 취소되는 와중에 시작된 당시 미식축구 시즌은, 역사상 최고의 쿼터백으로 여겨지는 탐 브레디(Tom Brady)가 운동선수로는 노년의 나이에 새로운 팀으로 이적을 한 첫해였기에 엄청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탐 브레디의 새 소속팀은 슈퍼볼까지 올라갔고, 신예 쿼터백인 패트릭 마홈(Patrick Mahomes Ⅱ)이 이끄는 작년 우승팀과 격돌하여 결국 우승 트로피까지 들어 올렸다. 40대의 노장 쿼터백이 20대 초반의 젊은 쿼터백과의 대결에서 이기는 모습을 보며, 자기반성과 위안을 동시에 느낀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리라 생각한다.


사실 격투형 스포츠라 불리는 미식축구는 선수의 생명이 짧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상대 선수와의 컨택이 빈번한 러닝백이나 라인맨들은 각종 근골격계 부상뿐 아니라 뇌진탕 등의 위험한 상황에 자주 노출된다. 실제로 태클을 받아보면 교통사고를 당한 경험이 없더라도 그 느낌이 어떠할지 상상할 수 있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문제 중 하나는 이러한 상황들에 선수들이 익숙해지면서 위험을 더 이상 위험으로 인식하지 않고 더 강하고 거친 플레이를 한다는 것이다. 선수들을 보호하기 위해 협회 차원에서 플레이 규칙을 개정하고 안전 프로토콜을 개발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이러한 간접적 방법은 한계점이 있다.


운동 장비 및 기구를 개선하는 것은 선수들을 보호하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 중 하나가 될 것이다. 특히 다양한 보호장비들을 구비하고 플레이하는 미식축구는, 제품의 설계부터 생산까지를 총체적으로 담당하는 기계공학에 상당히 매력적인 스포츠가 아닐 수 없다. 치아를 보호하는 연성소재의 마우스피스에서부터, 무릎 및 팔꿈치 관절을 보호하는 강성소재의 브레이스(Brace), 강성의 스켈레톤에 연성의 충격 흡수제가 연결되어 있는 숄더패드와 헬멧까지 각 보호장비가 역학적 상관관계에 따라 조금 둔탁하지만 효율적으로 설계되어있다.


머리 부분을 보호하는 헬멧은, 다양한 보호장비들 중에서도 연구개발이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분야이며 기계공학적 문제 접근 및 해결법을 잘 보여준다. 전진패스가 불가한 럭비에서 한 번의 전진패스를 허용하며 발전한 미식축구는, 선수들 간의 정면충돌에 의한 두개골의 부상이 빈번하게 일어나자 헬멧을 장착하기 시작했다. 초창기의 헬멧은 가죽으로 덧대인 골무같은 형태를 띄었다. 하지만 가죽으로 이루어진 연성의 헬멧은 충격 시 두개골을 보호하는 효과가 적으므로, 충격이 일어날 때에도 헬멧의 형태를 유지할 수 있는 강성의 플라스틱을 이용한 헬멧으로 대체되었다.


강성의 플라스틱으로 이루어진 헬멧의 내부에는 두꺼운 충격흡수층을 추가하여 두뇌로 전달되는 충격에너지를 흡수 할 수 있도록 설계하였기에, 두개골 골절의 방지에 초점을 두던 당시 상황에서는 획기적인 기술의 발전이었다. 하지만 두개골 골절의 위험에서 벗어난 선수들은 더욱 두려움 없이 강하고 세게 상대선수와 부딪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선수들의 코와 치아 포함한 안면부위의 부상이 늘어나게 되었다. 따라서 협회에서는 헬멧에 철창처럼 생긴 페이스마스크 장착을 의무화하였고, 이를 통해 현재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미식축구의 헬멧 모습이 되었다.


이렇게 설계되어 잘 사용되고 있던 헬멧이 전환점을 맞게 되는 계기가 생긴다. 그것은 은퇴한 미식축구 선수들이 이상행동을 보이는 것이 선수시절 겪게 되는 뇌진탕과 관계가 있는 것이 밝혀지고 나서이다. 2015년 개봉한 영화 ‘컨커션(Concussion)’은 미식축구 선수의 뇌에 반복적으로 가해지는 충격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밝히는 과정이 재미있게 풀어져 있다. 이 연구결과를 통해 선수 및 관계자들은 선수에게 충격이 가해졌을 때, 두뇌가 두개골 내벽에 부딪히며 강한 충격을 받는 메커니즘을 확인하게 되었고, 더 이상 헬멧의 역할을 두개골 보호에 국한하지 않는 계기가 되었다.


기계공학적 관점에서 헬멧의 새로운 설계변수가 추가된 것이다. 이에 따라 많은 기계공학 연구자들이 미식축구 선수가 충격을 받았을 때 두개골 내부에서 두뇌의 움직임을 억제할 수 있는 새로운 헬멧을 설계하기 시작하였다. 나무에 머리를 셀 수 없이 부딪혀도 되는 딱따구리에서 아이디어를 얻으려는 연구팀도 있었으며, 서로의 박치기를 하며 영역 싸움을 하는 산양도 연구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복잡한 메커니즘은 산업체의 기존 생산공정을 통해 달성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기존 헬멧의 형태를 최대한 이용하는 창의공학적 설계가 주로 사용되었다.


헬멧의 창의공학적 설계를 위해서는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 경우 문제는 두뇌가 두개골 내부에 떠 있는 구조적으로 불안정한 물체이기 때문이다. 두뇌는 어느 곳에 고정되어있지 않고 액체 내부에 떠 있다. 때문에 선수에게 충격이 가해졌을 때 두뇌는 관성에 의해 계속 움직이다 헬멧에 의해 고정된 두개골과 내부에서 충돌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파악한 미국의 대표적인 헬멧 제작업체는, 외부충격 시 헬멧 내부의 두개골도 관성에 따른 움직임을 일정 부분 유지할 수 있도록, 헬멧의 외부 플라스틱 부분에 홈을 내어 일정 부분 변형이 일어날 수 있도록 하였다. 즉, 두개골과 두뇌가 충돌하더라도 그 충격량을 줄일 수 있도록 설계가 되었고, 요사이 프로/대학 미식축구 리그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물론 현재 개발된 헬멧도 뇌진탕의 문제를 완벽히 해결하지는 못하며, 헬멧 이외의 보호장비들 또한 발전을 필요로 하는 부분들이 산적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식축구에 열광하는 상황을 보면 앞으로도 미식축구의 안전을 위한 장비들이 끊임없이 개발될 것이다. 앞으로 어떠한 창의적인 설계 제품이 나오게 될지 기계공학자이자 미식축구의 오랜 팬으로서 매우 기대가 되는 바이다.


기계공학과 김상엽 교수('창의적종합설계'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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