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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어렸을 적 살았던 동네에는 아주 사나운 개가 한 마리 살았다. 요즘에는 사람들의 애완견 관리에 대한 인식이 많이 높아져서 목줄도 채우고 입마개도 씌우고 하지만, 예전에는 목줄이 풀린 채 동네 길거리를 활보하는 강아지를 꽤 종종 볼 수 있었다. 이 개도 마찬가지로 늘 목줄에 묶여 있지 않고 자신의 집 앞을 지나는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으르렁대며 짖곤 했다. 이 골목을 지날 때마다 나는 호흡이 가빠지고,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손바닥에 땀이 나며, 극도의 긴장 상태로 주위를 살폈던 기억이 있다. 또한, 머릿속으로는 '이 강아지가 금방이라도 골목으로 뛰어나와서 나한테 달려들면 어떡하지?'라고 걱정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살면서 일상 속에서 경험하는 불안 혹은 공포라는 현상이다. 즉, 공포 및 불안은 인간이 위협 자극을 인식했을 때 보이는 행동 및 정서적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공포 및 불안반응은 일차적으로는 인간으로 하여금 위협상황에 잘 대처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구체적으로, 위협을 인식하게 되면 우리 뇌는 교감신경(Sympathetic nervous system)을 활성화해서 싸움-도망 반응(fight-or-flight response)를 촉진한다. 이에 따라 우리 몸은 저장된 에너지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위협에 대처하거나 위협상황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도록 태세 전환을 하게 된다. 그 결과 호흡이 가빠지고, 동공이 확대되고, 심장박동과 혈압이 증가하는 등의 생리학적인 증상이 나타난다. 정리하자면, 위협상황에 마주했을 때 나타나는 적절한 공포 및 불안반응 자체는 인간의 생존을 돕는 적응적인 기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위협 자극이 없거나 위협의 정도가 경미한 상황에서 과도한 불안반응을 지속적으로(몇 주 혹은 몇 달 이상) 보이게 된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불안장애를 겪는 사람들은 일반적인 사람들이 불안을 경험하지 않거나 경미한 정도의 불안감을 느낄만한 상황에서도 과도한 불안감을 경험하게 된다. 예를 들어, 사회불안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수업에서 처음 만난 사람과 대화를 하는 등의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과도한 불안감과 공포심을 느끼게 된다. 불안감과 공포심을 느끼게 되는 데에는 여러 가지 기제가 있을 수 있는데, 상대로부터 판단이나 거절을 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실수나 수행에 대한 부담감에 기인하는 경우들이 많다. 이러한 생각들은 그들로 하여금 사회적 상호작용을 위협자극으로 인식하게 만들어 불안감을 발생시키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 많은 연예인들이 앓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 공황장애도 불안장애의 한 종류이다. 공황장애는 공황발작의 지속적인 경험과 향후 공황발작에 대한 두려움으로 특징지어진다. 공황발작은 예기치 않게 극심한 불안증상이 일순간에 몰려오는 현상인데, 보통 증상은 5분에서 10분 정도에 정점을 이루고 점차 사라지게 된다. 공황장애 환자들 중 많은 수는 인체 내부의 생리적 신호(심장박동의 변화 등)에 과도하게 예민한 특성을 보이는데, 생리적 신호의 변화를 감지했을 때 그것을 위협 자극으로 잘못 인식하여 교감신경이 과활성화가 된다. 그 결과, 과도한 싸움-도망 반응이 나타나서 결국 공황발작으로 그들을 인도하는 것이다. 그 밖의 불안장애에는 일상생활의 대부분의 일을 위협적으로 인지하여 과도한 걱정반응을 보이게 되는 전반적 불안장애, 특정한 대상에 대한 과도한 공포심을 보이는 특정 공포증, 부모나 양육자로부터 분리될 때 과도한 불안감을 보이는 분리불안장애, 공공장소나 사람들이 밀집한 장소에 과도한 공포를 느끼는 광장공포증 등이 있다. 안타깝게도 불안장애 환자들은 그 증상으로 인해 삶의 여러 영역(직업, 학업, 대인관계 등)에서 심각한 기능적 손상을 경험하게 된다.


그렇다면 무엇이 불안장애를 야기하는 지, 어떤 사람들이 불안장애에 취약한지에 대해 궁금증을 가질 수 있다. 임상심리학의 취약성/기질-스트레스 이론의 관점에 따르면, 불안장애에 대한 유전적/생물학적 취약성을 가지는 사람들이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부모이혼, 왕따, 학교부적응 등)을 겪으면 그러한 기질적 취약성이 불안장애 증상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즉, 유전적 취약성을 가지는 모든 개인들이 불안장애를 반드시 앓는 것이 아니라 기질적 취약성과 스트레스가 상호작용해서 나타나는 결과물이 불안장애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심리학자들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기질적 취약성을 가지는 개인들을 변별해 내고 이들이 스트레스 상황에 잘 대처하도록 돕는 예방적/치료적 개입을 제공하는 것이라 하겠다.


불안장애는 가장 흔한 정신장애 중 하나이다. 서양의 역학연구에 따르면 20-30% 사람들이 일생동안 적어도 하나 이상의 불안 장애를 겪는다고 한다. 불안장애는 흔한 장애이긴 하지만 그것을 겪는 개인에게 극심한 정서적 고통과 기능적 손상을 야기할 수 있으므로, 그들이 적절한 진단과 치료를 받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만일 내가 몇 주 혹은 몇 달 동안 특정한 상황이나 자극에 대해서 과도한 불안감을 경험하고 그것 때문에 나의 학교생활이나 직장업무에 큰 지장이 있다면, 전문가를 찾아가서 진단 및 검사를 받아야 한다. 불안감이나 우울감을 경험한다는 것은 내가 나약하거나 게으르다는 뜻이 아니다. 건강한 사람도 때로 몸이 아플 수 있는 것처럼, 살다 보면 우리의 마음도 아플 수가 있다. 몸이 아플 때 의사를 찾아서 검진을 받는 것이 자연스럽듯이, 마음이 아플 때는 정신건강 전문의나 임상심리사/상담심리사를 찾아가서 검진받는 것이 적절한 조치일 것이다. 불안장애 치료에는 여러 가지 치료기법들이 존재하고 그 치료법들의 효과와 효능도 다수의 연구들을 통해서 검증이 잘 되어있다. 불안장애는 크게 항우울제와 같은 약물을 사용하는 약물치료와 인지행동치료 같은 심리치료를 통해 치료할 수 있다. 불안장애는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제대로 받으면 빨리 호전되고 치료효과도 오래 지속되는 경우들도 많이 있다. 하지만, 치료시기를 놓쳐서 증상을 방치하게 되면 삶의 여러 영역에 부정적 영향과 손상을 끼치고 악순환을 만들 수 있기에, 적절한 시기에 정확한 진단에 근거한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아무쪼록, 우리나라에서도 정신장애에 대한 편견이 줄고, 정신건강관련 서비스에 대한 인식이 점차 증가해서 국민들의 전반적인 정신건강이 개선되는 결과로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심리학과 김현식 교수('건강심리학'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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