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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모토로라를 누르고 세계 1위 휴대폰 기업이 된 노키아는 경이로운 성과를 보여준 '성공 기업'의 대명사였다. 노키아는 아이폰이 처음 출시된 2007년에도 휴대폰 업계 2, 3위인 모토로라와 삼성전자를 합친 것보다 휴대폰을 많이 판매했다. 한때 핀란드 전체 수출액의 23%를 혼자 일궈낸 국민 기업이자, 핀란드 국민들의 자부심이었다. 그러나 최고조에 이른 2007년 이후, 2010년부터 적자가 나기 시작해 2013년 마이크로소프트(MS)에 휴대전화 사업이 7조 원에 매각되면서 몰락했다. 노키아 사례는 1등 기업의 몰락 과정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교범이다.


1935년 S&P500 기업의 평균 존속 기간이 90년이었다면, 1975년에는 30년, 2011년엔 18년으로 급감했다. 1980년 출간된 베스트셀러가 선정한 미국의 60개 초우량기업 중 현재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회사는 10개뿐이다. 이처럼 조직이 직면하는 외부 환경이 갈수록 변화가 심하고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조직이 계속 생존하기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생존을 위해서는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이 가능해야 하지만, 사람이 자신의 습관을 버리기 어렵듯이, 조직의 변화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세계적인 조직 변화 전문가인 J. Kotter는 조직이 실제적인 변화를 이루기 위해 거쳐야 할 여덟 단계 중 첫 번째 단계인 위기감 조성을 특히 강조했다. 그런데 과연 조직이(또는 조직 구성원들이) 위기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변화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기에 변화에 실패하는 것일까?


노키아의 휴대폰 시장에서의 몰락 과정을 분석한 Vuori와 Huy의 연구(Admini strative Science Quarterly, 2016)는 이에 대한 새로운 답을 제시한다. 그들은 2005~2010년 동안 노키아 내부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 당시 노키아의 최고경영층, 중간관리자들, 엔지니어 및 외부 전문가들과의 심층 인터뷰를 질적인 측면에서 분석했다.


정서는 진화의 부산물로 유기체의 생존확률을 높여준다. 정서는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에 영향을 주고, 기억을 조직화하며, 중요한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정서를 유발하는 자극에 자동으로 주의를 기울이게 돼 있고 그것에서 쉽게 눈을 떼지 못한다. 특히 두려움을 유발하는 자극에 대한 정서 반응은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것으로 진화했다. 우리가 특정 상황에 직면할 때(예를 들어, 경쟁회사가 혁신적인 신제품을 내놓는다는 첩보를 접할 때), 어떤 정서를 느끼느냐는 두 단계의 ‘평가’ 과정에 의해 결정된다. 즉, 그 상황이 나에게 좋은 것이냐 나쁜 것이냐의 1차 평가와 더불어 상황이 나쁜 것(위협)으로 평가되고 그것을 내가 감당할 수 있느냐에 대한 2차 평가가 이어진다. 상황이 자신에게 위협으로 느껴지고 그것을 다룰 능력이 없다고 평가되는 경우, 우리는 두려움이라는 정서를 경험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경영전략 전문가들은 노키아의 몰락을 가져온 결정적 5대 실책으로, 플립폰 트렌드 따라잡기 실패, 미국 시장에 대한 경시와 오판, 아이폰의 위협 무시, 자체 운영체계(OS)인 '심비안'을 조기에 버리지 못한 점, 차세대 플랫폼 확보 실패 등을 꼽는다. '전략적 실수'와 '전술적 실수'를 동시에 범했다면서, 전략적 실수로는 1등 기업 유지를 위한 비용관리에만 집중하다 조직의 현실 안주화와 보수성을 초래한 것을, 전술적 실수로는 아이폰의 위협을 소홀히 한 경영진의 판단 착오를 들고 있다.


그러나 Vuori와 Huy의 연구에 의하면, 당시 CEO인 칼라스뷰오는 휴대폰 시장에서의 경쟁우위에 대해 편집증적인 관심을 보였고, 아이폰 출시 1년 전부터 이미 세부 특성들을 파악하고 있었다. 일례로 노키아의 가장 큰 약점인 터치스크린 제품의 부족이나 진보된 OS 부재 등에 대해 즉각적인 대응을 강조했다. 따라서 경영진이 아이폰의 위협을 무시하거나 소홀히 했다는 분석은 근거가 없다.


아이폰으로 대표되는 휴대폰 기술의 혁신에 대해 노키아를 포함한 전 세계 휴대폰 제조업체들은 발 빠르게 대응했다. 그러나 노키아의 이런 대응 과정에는 문제가 있었다. 노키아의 내부 구성원들은 모두 두려움이라는 정서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먼저, 노키아의 CEO 및 경영진(TM)은 아이폰의 위협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였고, 그것이 중간관리자들에 대한 강한 압박으로 이어졌다. 둘째, 중간관리자들도 CEO를 비롯한 경영진의 압박에 대해 두려움의 정서 반응을 보였다. 또 시간이 지나도 계속 대응이 늦어지면서 경영진의 요구가 증폭되고 두려움은 가중됐다. 경영진과 중간관리자들 모두 두려움이라는 정서를 공유했지만, 두려움을 유발하는 대상이 달랐다. 즉 경영진은 아이폰과 같은 외부의 위협에 의해, 중간관리자들은 내부 경영진의 공격적 행동에 의해 두려움이 촉발됐던 것이다. 그리고 조직 전반에 두려움이라는 정서가 만연해지면서 두 집단 간 상호작용에 있어 디커플링이 발생하면서, 혁신 프로세스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게 됐다. 예를 들어, 새로운 OS 개발의 지연 상황에 대해 정확한 보고가 경영진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해(부정적인 보고를 하는 사람은 경영진의 공격 및 교체의 대상이 됨), 회사의 현 수준과 역량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없었다. 심지어 당시 CEO는 법무 출신이라 기술 관련 보고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았다. 상황이 점차 나빠지면서, 장기적 관점의 프로젝트들을 통해 근본적인 혁신이 필요함에도 대부분의 중간관리자는 근시안적인 사고와 행동만을 보였다. 이처럼 당시 구성원들은 위기나 위협을 느끼지 못해 변화에 실패했다기보다는 외부 위기에 경영진이 과도한 정서적 반응(두려움)을 보이고, 중간관리자들에게도 두려움이 전이되면서 조직 전반에 걸쳐 두려움의 정서가 만연된 것이 몰락의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심리학과 장재윤 교수(‘조직심리학’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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