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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되어 있다. 적어도 국가기본법상 우리나라의 국시(國是)가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는 어떻게 같고 다를까? 마치 우리가 숨 쉴 때 들이마시는 공기처럼 너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온 두 이념은 서로 어떤 점을 공유하고, 어떤 점에서 차이를 보이며, 그 둘을 둘러싼 오해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한번 고찰해보자.


역사상 민주정치를 처음 출범시킨 고대 아테네에서 참정권은 20세 이상의 성인 남성에게만 주어졌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 시민의 수가 대략 4만5,000명 정도였는데, 이는 재류 외인, 노예 등을 모두 포함한 전체 약 35만의 인구 중 12% 정도에 해당한다. 그중 성인 남성은 약 9,000~1만 명 정도였다고 하니, 3%도 안 되는 사람들이 97% 이상의 사람들을 통치했던 정치구조를 민주정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차라리 시민귀족정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현대 대의민주주의 또는 간접민주주의의 뿌리는 ‘대헌장’으로써 입헌주의의 출발을 알렸고 각 지역의 대표 2인을 파견하여 국왕의 과세를 승인해주던 ‘의회’라는 정치기구를 탄생시켰던 13세기 중세 영국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영국은 17세기 두 차례의 혁명과 권리청원(1628) 및 권리장전(1689)이라는 중요한 문서를 탄생시키며 인류 역사상 가장 먼저 오늘날 의회민주주의를 출범시켰다. 현대 민주주의는 바로 1689년 영국의 입헌군주정이라는 문을 통과하면서 그 모습을 드러냈고 그로부터 정확히 100년 뒤인 1789년 프랑스혁명을 통해 완성된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이념과 정치원리의 중심에는 참정권과 같은 정치적 권리로서의 ‘시민권’ 또는 ‘공민권’보다도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중시하는 보편적 ‘인권’의 가치가 더 많이 놓여 있다. 이 지점에서 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겹친다. 자유, 평등, 다수결의 원칙 같은 기초원리 외에 합리성, 양보성, 관용성, 자율성, 주체의식, 참여의식, 개성 존중 등이 민주주의를 이루는 핵심 구성요소라는 점만 보더라도 민주주의가 추구하는 목표가 시민권의 활용보다도 보편적 인권의 정립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고대 로마에서 시작된 복합정체로서 공화정은 사회 구성원인 시민들의 집합체로서 공동체의 안정과 이익에 주된 목표를 두었다. 이른바 공공선 또는 공동선을 추구하는 정치체제라고 할 수 있다. 로마의 공화정이 복합정체였던 이유는 그것이 정책 결정의 궁극적 책임과 권한을 가졌던 최고권력기구로서 원로원이라는 귀족정의 요소, 최고위 정무관으로서 막강한 행정권을 발휘했던 집정관이라는 군주정의 요소, 정무관을 선출하고 법률을 제정하며 재판이나 전쟁이나 외교와 같은 주요 국사를 투표로 결정하던 시민들의 모임으로서 민회라는 민주정의 요소 등 세 가지 기본 정체의 성격을 모두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로마의 공화정은 이처럼 귀족정의 성향을 지니면서 민주정을 그 안에 포괄하는 독특한 혼합정체였다.


공동체의 자유와 이익 실현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공화주의는 집단이나 전체보다는 개인의 인권을 더 많이 존중하는 민주주의와 궤를 달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테네 민주정의 본질뿐 아니라 로마 공화정의 속살을 들여다보면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는 사실이 곧 드러난다. 아테네 시민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시민들 다수의 의견을 존중해 독약을 마시고 죽은 소크라테스나, 정치공동체를 필요악으로 규정한 플라톤이나, 인간을 폴리스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도록 규정지어진 존재, 즉 ‘정치적 동물(zoon politikon)’로 정의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례에서 보듯, 폴리스는 그리스인들에게 개인보다 더 우선시되는 시민적 삶의 바탕이자 인간 존재의 이유(raison d’être)였다. 그들에게 정치 행위의 목적은 인간이 선과 덕이라는 자신의 본성을 바로 공동체 내에서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 있었다. 폴리스가 없다면 인간적 삶은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나온 성찰이었다.


마찬가지로 로마 공화정에서의 공공선의 추구 역시 시민적 덕(virtue)의 고양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여기서 덕이란 시민들이 공동체의 일에 참여하고 헌신하는 것을 말한다. 시민 개개인의 그러한 노력이 없다면 공동체는 외부의 침략 시도나 내부의 전제 세력 같은 내외의 적으로부터 쉽게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화주의란 시민들이 건설한 공화국을 그 적대 세력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한 시민들의 정치 참여와 납세, 군사적 봉사 등 공동체의 일에 참여하고 헌신하는 것을 핵심요소로 간주하는 사상이다. 실제로 6세기에 완성된 로마법대전을 보면, 에트루리아 왕정을 무너뜨리고 출발한 로마라는 도시국가의 ‘주권’이 왕이나 집정관이나 황제가 아닌 바로 ‘시민들’에게 주어진다고 명시되어 있다. 주권재민(主權在民) 사상과 시민들의 자율적 참여의식이라는 바로 이 지점에서 공화주의와 민주주의는 완전한 교집합을 이룬다.


외관상 개인주의적 자유주의를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는 민주주의가 사실은 그 출발부터 공동체의 존재를 개인보다 더 우선시했다는 점, 반대로 외관상 공동체의 안위와 이익 실현을 목표로 삼는 것처럼 보이는 공화주의가 사실은 시민들의 덕과 정치 참여를 공동체 형성의 필수조건이자 존재가치로 삼았다는 점을 통해 우리는 이 두 이데올로기가 결국 큰 틀에서 일치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로써 우리는 개인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는 것은 맞지만, 그 공동체가 없다면 개인 또한 살아갈 터전을 잃게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결국 인간과 사회는 서로를 필요로 하는 상보적 관계에 있음을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라는 우리나라의 헌법상 국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사학과 최성철 교수(‘현대세계의역사적이해‘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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