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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에 한번 열리는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나라의 행정부 수장을 국민의 손으로 뽑는 절차이다. 미국이 자유민주주의 진영을 오랫동안 대표하는 나라로 여겨진 것은 사실이나, 이 나라가 운영하고 있는 대통령 선거제도는 민주주의의 중요 구성 요인 중 하나인 평등 원칙을 위배하고 있다. 더 나아가 비민주적인 미국의 대통령 선거제도는 보수 정당인 공화당에게 유리하게 작동하고 있어서 국민들의 의사가 정책 결정에 반영되는 과정에서 심각한 왜곡을 일으킨다. 미국 대통령 선거제도에 내포된 비민주성의 내용과 그 시사점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보도록 한다. 


미국의 연방의회는 양원제이다. 상원의원은 6년 임기, 하원의원은 2년 임기로 자신의 지역구 이익과 국익을 반영하여 입법 활동을 한다. 연방제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은 인구수의 많고 적음을 구분하지 않고 50개 주 각각에 일괄적으로 2명의 상원의원을 배정해 주고 있다. 반면 각 주의 하원의원 수는 상대적 인구 크기에 의해 결정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구수가 느는 주가 있고 줄어드는 주도 있기 때문에, 10년에 한번, 0으로 끝나는 해에 인구조사를 수행해 주별 하원의원 수를 재조정한다. 현재 인구수가 가장 많은 캘리포니아 주는 53명의 하원의원을 배정받고 있고, 인구수가 가정 적은 와이오밍 주는 1명의 하원의원만을 연방의회에 보낼 수 있다. 


인구수와 상관없이 각 주의 상원의원 수가 2명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연방 상원에서는 인구수가 작은 주의 목소리가 클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인구가 약 4,000만 명이나 되는 캘리포니아에서 한 명의 상원의원은 약 2,000만 명을 대표하게 된다. 반면 인구가 채 100만 명도 안 되는 와이오밍의 상원의원은 약 50만 명의 목소리만을 대변한다. 따라서 상원에서 법안을 놓고 표결을 하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캘리포니아 주민들의 의견은 덜 반영될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이 제도는 50개 주 각각의 이해관계가 동등하게 법 제정 과정에 반영돼야 한다는 믿음에 근거하고 있다. 하지만 그 대가로 국민 한 명당 한 표를 갖는다는 일인일표(one person, one vote) 원리는 무시된다. 주 차원의 평등을 지키기 위해 개인 수준의 평등이 희생된 것이다. 


평등 원리에 위배되는 연방 상원제도는 궁극적으로 대통령 선거 제도에 왜곡을 가져온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미국의 대통령은 전국 단위 득표율이 아니라 확보한 선거인단 수에 근거하여 선출된다. 각 주에 할당된 선거인단 수는 그 주의 상원의원 수와 하원의원 수를 합친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 2명의 상원의원과 53명의 하원의원을 갖고 있는 캘리포니아 주의 선거인단 수는 55명인 반면, 2명의 상원의원과 1명의 하원의원을 갖고 있는 와이오밍 주의 선거인단 수는 3명에 불과하다. 대통령 선거 당일, 한 주에서 득표율이 가장 높은 후보가 그 주의 승자가 되는데, 승자는 그 주에 할당된 선거인단을 모두 가져간다. 이렇게 각 후보가 확보한 선거인단 수를 더해 과반 이상(270명)을 얻은 후보에게 차기 대통령 자리를 넘겨주게 된다. 


문제는 선거인단 수를 결정하는 요인 중 하나가 상원의원 수라는 점이다. 인구 약 4,000만, 선거인단 수 55명인 캘리포니아 주는 한 선거인단 당 약 73만 명이라는 계산이 가능하다. 한편 인구 약 100만, 선거인단 수 3명인 와이오밍 주는 약 33만 명 당 한 명의 선거인단이 배정된다. 이렇듯 인구비례를 고려한 하원의원 수가 선거인단 계산에 포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구수가 적은 주에게 유리한 상황이다. 


인구수가 적은 주들의 대부분에서는 공화당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한 고학력 유권자, 소수 인종 유권자들이 주로 대도시에 모여 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원의원 배정 방식에서 비롯된 미국 정치제도의 왜곡은 공화당에게 유리하게 작동하게 된다. 이것이 진보적인 내용을 담은 법안들이 상원에서 종종 부결되는 결정적인 이유일 뿐만 아니라, 최근 몇 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전국 단위 득표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후보가 선거인단을 더 많이 확보하여 당선된 이유이기도 하다. 2000년 공화당 부시 후보는 민주당 고어 후보보다 득표율이 낮았음에도 불구하고 당선된 바 있다. 그리고 2016년 공화당 트럼프 후보 역시 민주당 클린턴 후보에 비해 약 300만 표를 덜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당시 트럼프 후보가 승리한 주들의 대부분은 상원의원 수 배정 방식의 이익을 보고 있는 인구수가 작은 주들이었다. 


현 미국 정치체제가 보수정당인 공화당에게 유리하도록 짜여진 이유는 상원의원 배분 방식, 그리고 그것을 활용한 선거인단 배정 방식에 있다. 이러한 제도의 편향을 수정하기 위해 개인 차원의 평등 원리를 준수하는 정치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드물지 않게 들린다. 우선 쉽게 생각해 볼 수 있는 방안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 여부를 선거인단 수 말고 전국 단위 득표율을 기준으로 바꾸는 개혁이다. 또한 이와는 별도로 각 주의 상원의원 수를 인구비례에 의거하여 배정하는 개혁 역시 생각해 볼 만하다. 그런데 이러한 개혁안들은 연방헌법의 수정을 요구한다. 개헌을 하기 위해서는 연방 상원과 하원 각각에서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은 후, 50개 중에서 38개 이상(즉, 전체 주의 3/4)의 주의회에서 비준을 받아야 한다. 인구수가 적은 주들이 현재 유지하고 있는 명백한 이익을 포기할 리가 없기 때문에 이러한 내용의 개헌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미국 정치체제는 보수 정당인 공화당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인 채로 한동안 유지될 수 밖에 없다. 공화당 지지 성향이 강한 백인, 개신교도, 고졸자, 시골 지역 거주자의 상대적인 규모가 점점 줄어드는 위기 상황에 맞서 공화당이 언제까지 기울어진 정치제도의 혜택을 누릴지의 여부가 향후 미국 정치의 핵심 관전 거리 중의 하나이다.   


하상응(‘미국정치특강’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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