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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소통의 본질을 다루고 있는 책 <인간커뮤니케이션과 미디어>에 따르면커뮤니케이션은 언어적 메시지와 비언어적 메시지가 한 묶음으로 전달되는 신호들의 집합이다. 성공적인 커뮤니케이션은 언어적 메시지와 비언어적 메시지가 지니고 있는 의미가 잘 공유되었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언어적 메시지는 언어 기호를 토대로 하며, 비언어적 메시지는 얼굴표정, 감정 표현, 몸의 움직임(제스처), 목소리 톤 등을 바탕으로 한다. 언어적 메시지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기술에 의한 지식이 필요하다. 반면, 비언어적 메시지는 인간이 존재할 때부터 지니고 있는 자연 발생적인 표현이다. 이러한 관점을 고려하면, 비언어적 메시지는 언어적 메시지보다 더 본질적이고 진실된 의미를 포함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비언어적 메시지의 한 종류인 감정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감정이란 무엇인가. 우선 감정을 의미하는 영어단어를 찾아보면 affect, emotion, feeling, mood 등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emotion’은 정서/감정, ‘affect’는 감정/정서, ‘feeling’은 느낌, ‘mood’는 기분으로 번역된다. 이 글에서는 emotion은 구체적이며 짧은 기간의 내부적인 느낌의 상태, mood는 어떤 상황에서의 쾌 혹은 불쾌의 느낌, affect는 감정적인 유인가(valence 긍정 혹은 부정)를 가지고 있으며 emotion과 mood를 포괄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자 한다. 이 글에서 언급하는 감정은 emotion에 가까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감정은 이성과 대비되는 것으로, 인간이 합리적인 선택과 행동 의도를 형성하는 데 있어 방해가 되는 요인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최근 안토니오 다마지오(Antonio Damasio)를 비롯한 신경과학자들이 사람은 모든 정보를 고려해 논리적인 판단을 하는 게 아니라 주관적 기억과 감정에 의존해 판단하고 행동한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밝혀내면서, 감정의 역할에 대한 논의가 증가하고 있다. 실제로 러너 등(Lerner, Li, Valdesolo, & Kassam, 2015)은 2001년부터 2013년까지 ‘의사결정 과정에서 감정의 역할’ 관련 출판 논문의 숫자가 급증했다고 밝혔다. 이 연구들은 공통적으로 ‘사람들은 의미있는 결정을 할 때, 감정에 지배적으로 영향을 받는다’라고 가정을 하고 있다. 어떤 자극물에 대해 사람들이 태도 및 행동의도를 형성하는데 있어 감정은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사람들의 감정 반응은 합리적 선택과 행동의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주장은 정서 휴리스틱(affect heuristic)과 감정의 인지적 평가 이론(cognitive appraisal theory of emotion)을 근거로 한다. 이 두 이론은 공통적으로 ‘특정 메시지 혹은 자극물→감정 반응→태도 및 행동의도 형성’ 등 감정 유발과 그 영향력과 관련된 메커니즘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정서 휴리스틱은 특정 메시지에 대한 사람들의 감정은 인지적 과정을 거치지 않고 즉각적이고 빠르게 유발된다고 제시하는 반면, 인지적 평가 이론은 사람들의 감정이 인지적인 평가의 과정을 거쳐 유발된다고 제시한다. 인지적 평가 이론을 토대로 하면, 각각의 감정들은 나름의 평가적인 차원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나름의 논리와 패턴을 지니고 있다. 


실제로 공포, 불안, 슬픔, 분노 등 인간의 구체적인 감정들은 각각 다른 평가적인 차원에 의해 유발되며, 이를 토대로 각기 다른 행동 패턴을 불러일으킨다. 공포와 불안은 외부적인 위협이 불확실하거나 통제가 불가능하다고 평가될 때 유발되며, 분노는 어떤 특정한 사건이 확실하거나 통제가 가능하다고 평가될 때 유발된다. 슬픔은 돌이킬 수 없는 상실감에 대한 평가에서 비롯되는 것 뿐만 아니라 공감 및 동정의 맥락에서도 일어난다. 


다른 평가적인 차원에서 유발된 감정들은 향후 사람들의 행동의도에도 각기 다르게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보면, 위험 메시지에서 유발된 불안과 슬픔은 예방 행동의도에 영향을 준다. 공포는 회피 행동의도에, 분노는 처벌적인 행동의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나름의 논리와 패턴을 지닌 구체적인 감정들은 미디어의 영향력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올해 초 열린 미국과학진흥협회(AAAS) 연차총회에서 로빈 나비(Robin Nabi) 미국 산타바바라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감정과 재난 보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뉴스가 어떤 감정을 일으키는지 고민해야 한다. 결국 행동의 촉진제 혹은 행동의 장벽 역할을 하는 것은 감정이기 때문이다”라며 “기후변화에 관한 일반인의 예방행동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미디어 보도는 수용자의 두려움을 유발하는 프레임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에 진행한 필자의 연구에서도 재난 보도에서 유발된 불안, 슬픔은 예방 행동의도를, 공포는 회피 및 사회적 참여행동의도를 촉진하는 것으로 검증되었다. 이러한 연구들은 ‘재난 보도가 수용자의 감정을 어떻게 틀(프레임) 짓는가’에 따라 해당 재난에 관한 행동 의도와 정책 지지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전 세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재난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찰스 페로우(Chales Perrow)는 현대 사회의 시스템은 ‘복잡성(complexity)’과 ‘꽉 짜여진 체계(tight coupling)’로 구성돼 있다고 했다. 이러한 특징은 재난의 불확실성, 복잡성, 대형화를 유발시킨다고 했다. 실제로 지금의 재난들은 선형적이고 기계적인 메커니즘을 대응할 수 없는, 비선형적이고 불확실한 메커니즘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보았을 때, 위험상황에서는 이성 기반의 판단보다 감정 기반의 판단이 더 적합할 수 있다. 감정 기반의 판단은 인간이 수많은 경험을 통해 비선형적이고 진화적인 인간의 뇌 속에 저장해온, 우리 사회의 보편적 생존의 법칙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인간의 감정 기반 판단에 더 많은 주목을 해야 할 것이다.


임인재(‘인간소통과미디어’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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