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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지금 코로나19로 인해 생명의 위협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지구촌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라고 자부해온 인간이 한낱 미물인 바이러스로 인해 이렇게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살아가야 하다니… 왜 우리 앞에 이런 현실이 도래한 것일까? 


작금의 현실을 되돌아보며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생태 질서의 파괴이다. 생물들은 각자 살아가야 할 생태터전이 있고 그 안에 정해진 규칙이 있다. 그것이 파괴되었을 때 그 파급효과는 우리가 상상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거대한 파괴력으로 되돌아옴을 우린 지금 절감하고 있다. 생태 질서를 무시한 채 야생동물까지 자신들의 먹거리로 취급해온 인간은 결국 스스로 무덤을 파고 말았다. 무엇이든 자신이 원하면 쟁취하고야 말겠다는 인간의 교만함이 극에 달했음을 코로나 사태에 직면하면서 절감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가 되짚어봐야 할 것은 바로 자본주의적 가치관이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마치 인간의 삶에 행복을 가져오는 양 부추겨온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논리 안에서 우리는 더 많이 소비하도록 재촉받으며 살아왔다. 과다한 소비는 우리의 욕망을 더욱 자극했고 인간은 욕망의 바닷속에 침몰당한 채 닥치는 대로 잡아먹고 즐기며 살아왔다. 그 결과 지구촌의 생태계는 엄청나게 파괴되고 만 것이다. 


어떻게 해야 막무가내로 달리고 있는 인간의 질주를 멈출 수 있을까. 지금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그 현주소를 보려면 일단 멈추고 무엇이 문제인지 찬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경쟁 사회 속에서 쉼 없이 질주하며 살아가지만 정작 자신이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모를 때가 많다. 불가(佛家)에서 전해져오는 이야기가 있다. 어떤 사람이 말을 타고 전속력으로 달리자 길가에 서 있던 사람이 소리쳐 물었다. "어디 가는 길이오?" 그러자 말에 타고 있던 사람이 대답했다. "모르겠소. 말에게 물어보시오!" 그렇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말에 이끌려 가고 있지는 않은가? 여기서 달리는 말은 우리의 습관을 말한다. 자본주의적 가치관으로 인해 몸에 밴 습관들에 저항할 힘을 키울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필자는 이번 학기에 ‘수양과 명상’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우리의 삶은 doing의 연속이다. 


조금이라도 더 뛰어야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강박관념을 갖고서 우리는 앞다투어 달리고 있다. 이렇듯 질주하는 우리의 삶에 브레이크를 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doing(행위)을 잠시 멈추고 ‘just being(존재)’ 해보자. 


고요히 앉아 명상해본 적이 있는가? 그런 경험이 없는 이에게는 명상의 세계가 낯설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아니, 시간 낭비라고 여겨질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잠시라도 고요함 속에 있노라면 진흙 물이 가라앉듯 우리 마음도 맑아지게 된다. 바로 그 맑은 마음이 우리의 본래심이다. 이와 같이 우리의 본래심이 드러날 수 있다면 명상수행은 우리 삶에 질적 변화를 가져오기 위한 시간 투자라 볼 수 있지 않을까.


명상은 먼저 자신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관찰하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마음의 움직임을 알아차리다 보면 얼마나 우리의 마음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지를 알 수 있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과거와 미래를 오가면서 후회와 걱정으로 뒤범벅이 된 자신의 마음 상태는 마치 장난감 요요와도 같다. 이렇듯 우리의 마음은 지금 여기에 머물지 않고 과거와 미래를 쉼 없이 오간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자.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게 아닌가? 그런 점에서 과거와 미래는 우리가 만들어낸 환상의 시간일 뿐이며 참 시간이란 ‘지금 여기’밖에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미 지나간 과거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마음이 빼앗겨 ‘지금 여기’라는 시간을 놓치고 살아간다. 명상은 바로 이 사실을 자각하고 지금 여기를 온전히 살아갈 정신적 근육을 단련하는 수행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안에는 사물이나 사람에 대해서 ‘편견과 선입견’을 갖고 판단하는 자동판단체계가 작동한다. 명상 시 우리는 자신의 자동판단체계와 마주하게 된다. 그럴 때 이를 억제하지 말고 다만 자신이 자동판단체계로 판단하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게 중요하다. 이렇게 알아차리다 보면 우리 안에 여백이 생긴다. 그래서 일상에서 어떤 자극이 오더라도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기보다 간격을 둘 여백을 갖는다. 사실 우리의 성장과 행복은 상대에게 보이는 반응들로 인해 좌우된다. 명상은 바로 자극과 반응 간의 공간을 넓히는 수행이기도 하다. 


세계적 석학 유발 하라리는 21세기에 가장 필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깊이 자각하는 길’임을 거듭 강조한 바 있다. 그는 앞으로 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할 자신을 보다 더 깊이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그 방법론으로 명상을 제시한다.


어려운 상황을 겪을 때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모든 것이 끝장난 양 비관적으로 생각하기 일쑤다. 그런 태도로 우린 현재와 미래에 대해 스스로 문을 닫아 버린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이 처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자각하고 그것과 지혜롭게 관계를 맺는 방법을 배우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지금 일어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명상은 바로 이러한 자세를 키우는 길이다. 지금 여기를 알아차리고 그 현실을 직시하여 거기에 깨어 사는 길, 그것이 바로 명상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마음의 근육이 너무 약하다. 몸짱이 되기 위해 운동이 필요하듯, 마음의 근육을 단련하기 위해서 우리는 고요히 앉을 필요가 있다. 고요히 앉아있노라면 우리 안에 통찰(지혜)이 생긴다. 코로나19사태는 우리 각자에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도록 촉구하고 있다. 지금 난 어디에 서 있고 어디를 향해 있는가. 삶의 방향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느껴지는 요즘이다.


최현민('수양과 명상’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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