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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역사란 무엇인가? 이것은 내가 역사 공부를 시작한 때부터 역사학자가 된 지금까지도 늘 되묻고 있는 질문이다. 지금까지 역사 공부는 내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해 왔다. 나는 매일 가장 좋아하는 역사 공부를 하고 있고, 역사 연구와 강의로 내 자신의 능력과 노력을 평가받아 왔다. 대학 시절 나는 역사 공부만큼은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일요일 저녁이면 월요일 오전에 있을 전공 강의가 기다려졌고, 월요일 조간신문에 실린 TV 편성표를 보면서 그 주에 방영될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체크하며, 그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방영하는 날은 설레는 마음으로 방송을 기다렸고, 방송을 녹화하여 몇 번이고 돌려봤다. 나는 역사를 공부할 수 있는 곳이라면 서울과 지방을 가리지 않고 찾아다녔다. 각 대학 혹은 지역에서 개최되는 학술대회는 나에게 역사를 배우는 학원과도 같았다.


나는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면 주말에 봤던 다큐멘터리 내용 중 궁금했던 것을 적어 교수님들께 질문하러 다녔다. 그 내용이 역사가 아닌 지리학이나 국문학과 관련이 있는 경우, 인문대학의 각 교수 연구실을 찾아다니며 질문을 했다.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해 주실 교수님이 타 대학에 계실 경우엔 메일로 질문을 드리기도 했다. 대학 시절 나는 특히 한국고대사·조선시대사에 관심이 많았는데, 책과 다큐멘터리로 채워지지는 않는 부분도 많았다. 나는 ‘가르치는 사람은 많은 것을 경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주말마다 답사를 다녔다. 주중에 답사할 지역과 유적을 정하고, 도서관에서 복사해 온 자료들을 정리해 나만의 답사자료집을 만들었다. 토요일 아침이 되면 답사자료집과 필름카메라를 들고 답사를 떠났다. 버스터미널 안에 있는 김밥집에서 김밥 한 줄을 포장하고, 매점에서 음료수를 사 들고 설레는 마음으로 버스를 기다렸다. 올라탄 버스에서 답사할 지역까지의 풍경을 살펴보면서 답사자료집을 읽었다. 나는 답사를 통해 다양한 유적지를 찾아다녔다. 답사를 마치고 다시 버스터미널에 도착하면, 사진관에 사진 현상을 맡기는 것으로 한 주를 마무리하곤 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서 기행문을 작성한 후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역사를 공부하고 가르치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무작정 학교 박물관으로 찾아가 관장님께 고고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나의 호기를 대견하게 생각하신 관장님은 “어서 가방 내려놓고 일을 해보지 뭐 하고 있어?”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나는 박물관에서 고고학을 공부할 수 있었다. 강의가 없는 시간에는 박물관으로 가서 유물과 박물관 소장 도서를 볼 수 있었고, 주말에는 발굴 현장에서 유구를 접할 수도 있었다. 대학원 진학을 고민할 때도 나에게 고고학은 포기할 수 없는 분야였다. 현재 나는 조선시대를 연구하고 있지만, 그 시절 고고학에 대한 학습과 발굴 경험은 한국사를 가르치는 데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나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고, 넉살도 좋은 편이었다. 지방사도 공부해보겠다는 생각에 사학과 조선시대 교수님을 찾아뵀다. 교수님께 “저도 지방사를 공부해보고 싶습니다”라고 말씀드렸고, 교수님은 빙그레 웃으시며 “그렇다면 같이 공부해보자”라고 하시며 나를 받아주셨다. 그렇게 나는 사학과 선배들과 지방사를 공부할 수 있었다. 그 시절 학부 2학년이었던 내가 대학원 선배들과 공부한다는 것은 무리였지만, 교수님과 선배들을 따라 문중 조사와 지역의 유적·사적들을 조사하러 다녔다. 내가 했던 일이라야 문헌 중 어느 지역과 관련된 내용을 복사하고, 문중 조사에 필요한 물품들을 챙기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도 그 시절 교수님과 선배들 어깨너머로 배운 것들은 내가 석사 시절 문중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데 바탕이 되었다.
 

나는 군대에서 독학으로 일본어를 공부했었다. 복학 후에는 일본어 공부와 일본사 학습에 매진했다. 일본 유학생들과 교류하였고, 일본 원서를 정리해 발표를 준비하기도 했다. 아침에는 일본드라마로 하루를 시작했고, 오후에는 일본인 친구와 역사 교수법과 일본사를 함께 공부했다. 그러나 하고 싶은 것이 많았던 나는 진로를 놓고는 무엇 하나 정하지 못했다. 역사 공부를 심화해 나갈수록 교사보다는 연구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고, 그 꿈은 주변의 기대와 항상 충돌했다. 사대를 다니고 있는 이상 교사가 되는 것은 일종의 순방향이었다. 역사 교사는 부모를 비롯한 내 주변 사람이 바라는 모습이기도 했다. 그때 나는 역사가 내게 목적인가 수단인가를 두고 많은 생각을 했다. 역사 공부가 주는 즐거움과 그에 대한 열정은 그대로였지만, 역사 공부를 통해 무엇을 추구할 것인가에 대한 답은 알면서도 차마 말하지 못했다. 그때 나는 내게 역사란 무엇인가? 라고 묻고 또 되물었다. 그리고 내게 역사는 과연 목적인가? 수단인가? 라는 질문도 던져보았다.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그동안 역사를 공부하면서 해왔던 노력과 경험을 떠올려 보았다. 문득 나는 그에 대한 답을 미리 알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역사가 목적이라고 한다면, 왜 역사가 목적인지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지금까지 역사를 목적으로 삼아서 현실에 맞서왔다.
 

역사란 목적인가 아니면 수단인가라는 질문은 비단 사학과 학생들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이 질문의 답을 찾아가면서 진로 선택을 보다 확실하게 할 수 있었다. 이 질문은 나에게 인생을 살아가는 데 중요한 나침반이었다. 대학 강단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학생을 지도할 때 이 질문을 통해 자신의 진로와 인생의 방향을 찾아보도록 권유하고 있다. 여러분도 '○○란 목적인가 아니면 수단인가'라는 질문을 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이 질문의 답을 찾는 과정이 여러분의 대학 생활을 보다 풍요롭게 할 것이라 생각한다. 자! 우리 함께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자.


  • 장준호 (‘한국제도사’강의)
  •  승인 2019.11.1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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