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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믿으면 되지, 뭐하러 공부를 해? 주변에서 많이 듣는 질문이다. 대학에서 종교를 가르친다고 어디 가서 소개를 하면 신부님 혹은 목사님이냐는 질문도 많이 받는다. 더욱이 서강대학교를 가톨릭 학교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 틀림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신부님으로 단정 짓는다.


종교학. 한국에서는 여전히 낯선 학문이다. 큰 대학 중에서 종교학과가 있는 학교가 서울대학교와 서강대학교, 그리고 한신대학교 정도이다. 이 세 학교도 서울대학교만 제외하면 가톨릭, 개신교 배경의 학교이기에 신학과 혼동하기 딱 좋다. 하긴 신학과 종교학을 구분해서 알고 있는 일반인이 얼마나 될까?


나 역시 대학에 들어오기 전에는 종교학이라는 학문이 존재하는지 몰랐고, 내가 공부를 해보지 않았다면 서강대를 다녀도 신학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둘 다 종교를 공부하는 것이니 비슷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당연하다.


신학(神學 theology)은 오래된 학문이다. 예수를 믿던 소수인들의 종교가 로마 제국의 종교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등장한 학문이다. 이스라엘에서 출발한 일부 사람들의 신앙이 로마 제국 전체에 공유되기 위해서는 당시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지성적 작업이 필요했다. 제국에 걸맞은 보편적이면서도 철학적인 언어로 변환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것은 클레멘스(Clemens),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같은 당시 학자들의 몫이었다. 


이후 유럽의 종교가 된 그리스도교는 서양철학을 활용하여 신학을 발전시켰다. 이와 비슷한 성격의 학문이 교학(敎學)이다. 불교에서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사변적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었다. 중관(中觀) 학파, 유식(唯識) 학파들이 그들이다. 이들 역시 당시 인도철학의 사유들을 바탕으로 교학을 발전시켰다.


이렇듯 신학 그리고 교학은 믿는 자들의 학문이다. 자신들의 신앙을 전제로 하여 그 신앙을 보편적인 사유로 설명하거나, 까다로운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찾거나, 신앙의 발전을 위해 도움이 될 사유들을 탐구하려 한다.


종교학은 이와 다르다. 종교학은 계몽주의의 산물이다. 인간의 이성이 모든 것을 분석할 수 있다고 믿은 근대의 이성은 인간이 이룬 모든 것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또한 서구의 근대 이성은 인간의 보편성을 믿었기에 비교언어학, 비교신화학 등을 발전시키면서 ‘종교’도 비교하면서 분석하려 하였다. 종교학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하나만 아는 자 아무것도 모른다'는 괴테(Goethe)의 말은 종교학이라는 신생 학문의 막을 연 막스 뮐러(F. Max Muller)가 인용해서 종교학의 출발선언으로 유명해졌다. 


[종교와 세계문화], [한국문화와 종교]. 내가 서강대학교에서 주로 하는 강의이다. 학생들과 나는 가장 먼저 ‘종교’라는 개념이 우리들 머릿속에 어떻게 자리 잡고 있는지를 확인하면서 강의를 시작한다. 

사실, ‘종교’는 너무도 뻔한 개념 같은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굉장히 정의하기 까다로운 개념임을 알게 된다. 실제로 종교학자들이 ‘종교’에 대해 내린 정의는 아마 수백 가지가 될 것이다. 그중 유명한 것을 뽑아보면 다음과 같다. '영(spirit)을 믿는 것', '절대 의존 감정', '궁극적 관심', '인민의 아편', '유아기의 노이로제', '사회를 결속하는 힘', '개인이 그의 고독함 가운데 추구하는 활동'. 다 나름 ‘종교’의 어떤 모습을 보여주지만 모든 종교현상을 만족스럽게 포섭하지는 못한다.


그래서인지, 자신들이 공부하는 주제인 ‘종교’를 정의도 제대로 못하면서 무슨 연구를 하냐는 핀잔 내지 조소를 듣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달리 보면 ‘종교’는 우리의 생각처럼 뻔하지 않기에 ‘정의’를 하기 쉽지 않고 이렇게 저렇게 알아볼 여지가 많다. 나는 학생들에게 주로 인류학자 클리포드 기어츠(C. Geertz)의 종교 정의를 소개하며 이런 시각으로 종교를 보자고 제안하곤 한다. 


기어츠는 인간의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을 ‘의미’부여라고 본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스스로 짜낸 의미의 그물망에 매달려 있는 동물'이다. 그리고 인간이 ‘의미들’을 역사적으로 후속 세대에 전수하는 데 활용하는 패턴을 ‘문화’라고 보았다. 이렇게 문화라는 의미들의 패턴이 작동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상징’들이다. 기어츠가 보기에 이 상징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체계가 바로 ‘종교’이다. 결국 기어츠에게 ‘종교’는 사람들에게 세계관과 삶의 질서를 제공하는 ‘상징체계’이다. 예를 들어, 조선 시대 유교가 당시 사람들에게 도(道)를 중심으로 천(天)·지(地)·인(人)이 조화를 이루는 세계관을 제공해주었고, 예(禮)를 중심으로 자기 수양과 공동체 윤리 같은 사회의 에토스(ethos)를 제공하고 강화했다면 조선은 ‘유교’라는 ‘종교’의 영향 안에서 고유한 문화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막연히 유교를 종교가 아닌 정치체계, 윤리체계라고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종교’를 어떻게 정의하는 것이 우리가 처한 역사적, 문화적 상황을 다른 면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하는가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인간과 인간이 이룬 문화에 대해 종교를 포함한 다양한 시각을 통해 깊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한때 자연의 신비를 탐구하고자 화학과로 입학했던 나는 어쩌다 종교학자가 되어서, 도대체 종교를 왜 공부하냐, 당신은 정체가 뭐냐는 난처한 질문 앞에서 설명하느라 매번 진땀을 흘린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나는 어쩌다 종교학자가 되어 학생들과 함께 ‘뻔한’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펀(fun)하게’ 이렇게 저렇게 떠들며 내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고 살아가고 있다. 많은 학생이 각자의 삶에서 뻔한 이야기가 아닌, 의미 있는 이야기들을 대학 생활에서 만나가기를 바라는 바이다. 


  • 현재우('한국문화와종교' 강의)
  •  승인 2019.09.30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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