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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관계 안에서 시작되고 끝맺음 되는 존재이다. 따라서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어도 타인과의 관계를 조금이라도 더 잘 맺고자 하는 바람을 누구나 마음 한켠에 지니고 있을 것이다. 타인과 관계를 잘 맺는다는 것은 자기와의 관계를 잘 맺는 것의 연장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자신과 혹은 타인과의 관계를 잘 맺을 수 있을까. 아마도 나와 타인을 ‘온전하게’ 볼 수만 있다면 그 바람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와 타인을 온전하게 보는 것’은 우리의 인지적인 특성상 꽤 많은 방해를 받는다. 우리의 기억이나 주의와 같은 인지적인 자원은 한정되어 있어 중요한 것에 대해서는 심사숙고하는 반면,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대략적인 판단을 내린다. 이런 까닭에 우리의 지각은 주로 ‘알아야 할 필요성’에 근거하여, ‘보고자 하는 것’만 보려 하고, ‘초기정보와 일치’되는 정보를 편안하게 느끼는 특성을 지닌다. 또한 우리 자신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로 부정적인 것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다 보니 실제보다 ‘부정적인 면을 크게 인식’하는 특성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인지적 특성 이외에도 우리가 사람을 지각하는 데에는 여러 오류가 일어난다.

우선 지각자의 욕구나, 또는 (과거 상처받은 경험으로 인한) 감정적인 응어리가 작용하여 타인이나 자기에 대해 있는 그대로 못 보게 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수단적인 관점, 혹은 부정적인 예측이나 가설을 세워 그 틀을 통해 바라봄으로써 자기나 상대방, 혹은 그 관계에 대해 부정적인 인상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또 다른 경우로 인지처리방식 때문에 일어나는 오류를 들 수 있다. 우리는 한정된 인지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특징에 따라 분류’하는 정보처리방식을 사용한다. 사람을 지각하는 데에도 마찬가지여서, Maslow에 의하면, 주로 유용성이나 위험성의 여부로 범주화한다. 쉽게 표현하면 ‘네 편, 내 편’ 편 가르기 메커니즘이 자동으로 작동되는 것이다. 그런 후에 ‘네 편’의 구성원에 대해서는 사실에 기초하여 개별적이고 고유한 존재로서 지각하는 것이 아니라, 선입견을 지니고 덜 호의적인 태도로 대하게 된다.

또한 타인의 행동을 바라볼 때 상황적 요인을 덜 고려하고 그 개인 요인으로 원인을 돌리는 ‘대응편향’ 역시 인지적 왜곡 가운데 하나이다. 예컨대, 공공장소에서 화를 내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화를 낼 수밖에 없는 사정을 궁금해하기보다 ‘그 사람 참 성격 나쁘다.’라고 판단하는 경향성을 의미한다. 이러한 인지적 왜곡들에 더해 믿는 대로 보고자 하는 ‘확증편향’까지 가세하면, 자신과 타인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은 점점 더 요원한 일이 되고 만다.

이처럼 우리의 인지적 특성과 오류들은 상대방과 있는 그대로 함께하는 방식인 ‘공감(共感)’을 방해한다. 더 나아가, 나와 그의 내면에 존재하는 가능성, 심성, 소질, 뜻보다는 어떤 순간의 말과 행동, 어떤 모습과 특징만을 보게 하며, 나날이 새롭게 변화하는 국면에 대한 포착을 어렵게 한다. 결국은 ‘나’와 ‘너’ 안에 잠재된 생명력에 대해 감흥을 느낄 순간들을 놓치게 한다.

 

우리의 사정이 이러한데, 어떻게 하면 나와 타인을 ‘온전하게’ 볼 수 있을까.

먼저 자신과 타인에 대해 일어나는 순간적인 감정과 생각에 대해 ‘정말 그런가.’라는 의문을 달아보기를 권한다. 단순하지만 이런 형태의 되물음은 성찰의 시작이다. 편향된 채 확장되어가는 생각과 감정을 ‘멈추게’ 하고, ‘사실확인’을 하게 하여, ‘있는 그대로’ 보도록 도움을 준다.

다음으로 ‘새롭게 보는 것’이 필요하다. 새롭게 본다고 하는 것은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중도(中道)적으로 보는 것을 의미한다. 같은 실체나 현상에 대해 바라보는 이의 입장과 놓인 맥락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음을 아는 것, 다른 의견이나 다른 성향을 배제하는 극단적인 태도가 아니라 그 상황에 맞는 유연함과 조화를 적절하게 추구하는 것, 어떤 성향이나 성질이 서로 상극인 것처럼 보여도 연결된 하나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시각을 말한다.

이런 중도적인 시각을 지니기 위해서 시도해볼 만한 구체적인 방법이 있다.

첫째, 어떤 것을 이해할 때에 나의 주관적 관점, 사실에 기초한 객관적 관점,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이해하는 공감적 관점을 골고루 넘나드는 ‘관점의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장발장이 배를 곯는 조카들을 위하여 빵을 훔친 행위는 형사 자베르나 객관적인 입장에 의하면 절도라는 악행이다. 하지만 관점을 달리하여 조카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선행이기도 하다. 이렇게 관점을 달리 해 볼 때, 장발장의 인간에 대한 사랑과 책임이라는 본래 심성과 뜻이 드러난다.

둘째, 부분에서 전체로, 겉에서 속으로, 표면에서 본질로, 고정불변의 것에서 변화하는 것으로 ‘주의초점을 변화’시켜보는 것이다. 예컨대 주의초점을 표면에서 본질로 전환하기만 한다면 성격의 단점은 단점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화의 본질을 살피면 ‘힘이나 에너지’이다. 이것은 발휘하기에 따라 열정이나 활력, 주도성으로 드러날 수 있다. 우울함으로 이끄는 반추도 그 본질은 ‘생각하는 힘’이다. 이것 또한 발휘하기에 따라 성찰적인 면으로 드러날 수도 있다.

셋째, 어떤 것을 판단하는 구성개념을 해체하고 다시 새롭게 구성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대상 관계 이론가인 Winnicott을 예로 들 수 있겠다. 그는 이른바 비행 청소년들의 ‘공격성’을 ‘생명력’으로 이해하여 거기에서 희망을 발견해갔다. 그리하여 반사회적 경향성을 지녔다고 이름 붙은 청소년들을 만나 그들의 아픔을 치유해주고 성장의 길을 동행하였다. 얼마나 아름다운 해체와 재구성인가. 이렇게 새롭게 보기를 시도할 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고, 나와 그의 온전함이 보이기 시작한다. 비로소 그때 나와 너의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실천 방법을 소개하자면, ‘내가 왜 꽃인가, 그가 왜 꽃인가’하는 화두(話頭)를 마음에 품는 것이다. 당장에 그 답이 나오지 않더라도 그 질문은 ‘나’와 ‘너’의 ‘온전함’을 보게 하는 안내자가 될 것이다. 혜능(慧能)의 게송처럼 우리의 마음이 이미 그곳을 향해 있으므로.


  • 김태사('인간관계의심리와대인관계기술' 강의)
  •  승인 2019.05.25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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