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을 짓는 사람들, 서강대학교 성탄 구유의 모든 것
작성자 서강가젯(Sogang gazette)
작성일 2020.12.21 12:01:33
조회 2,265



  

  '성탄 구유'가 매해 연말 서강을 환히 밝힌다. 이제는 명실공히 서강의 명물로 자리매김한 구유의 모든 것. 서강가젯이 알아보았다.

  

  

 해마다 12월이 되면 서강대학교 앞마당에 특별한 건물이 생겨난다. 초가집 한 칸 남짓한 허름한 조형물에서는 따스한 불빛이 새어나온다. 방 안에서는 두 남녀가 지푸라기 위에 무릎을 꿇고 있다. 눈을 내리감고 기도를 드리는 모습이 경건하다. 등불을 든 사람은 찬란하게 빛나는 강보에 경배를 올린다. 지붕에서는 천사가 은은히 미소짓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장면을 나타낸 성탄 구유다.
 서강대학교는 2000년부터 성탄절을 기념하여 성탄 구유를 조성해 왔다. 예수 탄생의 순간과 어우러진 다채로운 벽화는 구유를 단순한 조형물이 아닌,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킨다. 함께 진행되는 축성식, 성탄 트리 점등식 등도 빠질 수 없는 볼거리다. 이제 구유는 캠퍼스의 연말을 상징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2월 서강가젯에서는 '성탄 구유의 모든 것'을 취재하였다.

  

  

  

 # 큰 사랑의 마음을 담아-2020 성탄 구유 축복식      

  


▲ 아름다운 2020 성탄 구유의 모습

  

  

 지난 12월 1일, 2020년의 성탄 구유가 불을 밝혔다. 구유 완성의 기쁨을 나누는 축복식과 성탄 트리 점등식이 거행된 것이다. 화요일 오후 6시 구유 앞에는 김상용 교목처장을 비롯하여 교직원과 재학생 등 20여 명의 서강 가족이 모여들었다. 코로나19로 인해 규모와 절차 면에서 대폭 축소되었으나, 그 경건함만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었다.
축복식은 김상용 교목처장이 주례하였으며 정화식, 미사 강론, 축복기도 순으로 진행되었다. 김상용 교목처장은  "성탄이 지닌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가 힘든 시기를 보내는 우리 모두에게 힘이 되길 바란다"라며 서강 가족을 향한 응원을 드러냈다. 행사 참여자들은 이에 화답하듯 고요히 기도문을 낭독하였다. 따스하고 소담스러운 구유의 모습은 오가는 서강인의 발길을 잡았다. 구유 앞 마련된 촛불함에 기도를 드리는 모습도 더러 보였다. 내년 1월 11일 철거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서강대학교 구성원 누구나 구유를 찾을 수 있다. 작년까지는 외부인에게도 열려 있었으나,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내부 출입은 제한된다.

  


▲ (왼쪽부터) 촛불함에 기도를 드리는 모습, 성탄 구유 축복 현장

  

  

 서강대학교 앞마당에 구유가 자리한 지도 어느덧 스무 해를 맞았다. 성탄 구유는 2000년 서강대학교 교목처의 주관 아래 첫선을 보였다. 서강대학교만의 특별한 성탄 의식을 고민하던 당시 교목처장 변희선 교수와 예수수도회 소속 유태경 수녀에게 '성탄 구유'라는 영감을 준 것은 명동대성당 앞 설치된 '아기 예수의 탄생' 조형물이었다. 구유에서 태어나신 아기 예수의 모습은 '낮은 곳을 향한 지극한 사랑'이라는 성탄의 의미에 무엇보다도 잘 어울리는 이미지였다. 교목처는 즉시 학교 시설물을 담당하는 영선실에 제작을 의뢰하였고, 마침내 2000년 12월 첫 성탄 구유 축복식이 거행되기에 이른다. 성탄 트리 점등식, 성가대 '피앗(PIAT)'의 공연도 함께 진행되었다.


 "예수 탄생 축복"이라는 성탄 구유의 핵심 정신은 2013년부터 다양한 주제와 연계되어, 큰 사랑과 평화의 정신을 그려낸다. 성 요셉과 성모 마리아는 헤롯 왕의 폭정을 피해 베들레헴으로 도망치고, 허름한 마구간에서 예수를 낳는다. 가장 가난하고 핍박받는 곳에 강림하신 아기 예수의 이야기는 '하느님 사랑의 겸손함'을 상징한다. 서강대학교는 이러한 의미를 이어받아 구유에 매년 공동체 정신을 담아낸다. 2013년에는 도시 빈민촌, 2014년에는 세월호, 2015년에는 난민촌, 2017년에는 '자비의 움직임', 2018년에는 한반도 평화통일, 작년인 2019년에는 '위안부' 문제를 주제로 구유가 지어졌다. 어느 대학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서강의 색깔과 사랑의 정신이 가득 담긴 행사는 그렇게 20년을 이어 왔다. 서강가젯은 구유 제작 담당자 박상연 차장과 교목처장 김상용 신부를 만나 더 깊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성탄 구유의 아버지, 제작 총괄 박상연 차장을 만나다      

  

  

 12월 초 구유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11월부터 공사를 진행해야 한다. 늦가을 캠퍼스를 거닐어 본 서강인이라면 누구나 그 현장을 보았을 것이다. 처음 구유가 만들어진 2000년부터 이 작업은 전적으로 서강대학교 영선실 박상연 차장이 총괄했다. 20년이라는 세월 동안 수많은 기억이 쌓였다. 성탄 구유의 자세한 연혁, 구유의 제작 과정, 작업의 희로애락까지…. 구유의 아버지, 박상연 차장의 목소리를 담았다.

  


▲ 구유 장인, 박상연 차장

  

  

안녕하세요 차장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서강대학교 교직원 박상연입니다. 영선실에서 학교 시설물의 관리와 보수, 그리고 올해는 코로나19 방역까지 책임지고 있습니다. 성탄 구유 제작 업무는 2000년부터 교목처와 협력하여 맡아 왔습니다.

  

  

학교의 모든 제반 시설을 담당하고 계십니다. 차장님께서 거쳐 오신 시간이 궁금합니다.


 원체 공작 활동을 좋아했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목공과 원형주조를 전공했습니다. 능력을 길러 기능올림픽에서 입상하고, 4년간 서울시 교육청에서 목직공무원으로 일했습니다. 서강대학교에는 1999년 입사해서 지금까지 영선실을 담당하고 있네요. 제가 주로 관리하는 업무는 목재 운용, 물품 운수, 시설 보수 분야입니다.
 입사하자마자 교목처장님께서 "성탄 구유를 만들려고 하는데, 제작을 맡아 달라."하고 부탁하셨습니다. 양재동 소품 시장, 목재 시장을 오가며 준비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년이나 흘렀네요. 정문, 이냐시오 성당, 예수회 공동체에 놓인 것까지 합치면 그동안 구유를 50개쯤 만든 것 같습니다(웃음).

  

  

구유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궁금합니다. 매년 디자인도 조금씩 다른 것 같은데, 어떻게 진행하시나요?


 네, 성탄 구유는 매해 새로 제작합니다. 기본적인 뼈대는 존재하지만, 설계 방향이나 디테일한 요소들은 매년 새로 구상하고 만들어야 해요.
  11월 초 교목처에서 업무협조 요청을 받으면 11월 둘째 주부터 공사에 들어갑니다. 올해는 11월 9일에 착공했습니다. 구유 디자인, 건축설계, 제작, 소품 마련까지 모든 제작 과정은 영선실의 몫입니다. 2013년부터 구유의 '테마'가 정해지다 보니, 요즘은 교목처에서 설계 시안을 보내주시기도 해요. 구유의 핵심 정신이 잘 구현되도록, 지루하거나 식상하지 않도록 매년 다른 디자인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구유 역사의 산증인이시네요. 구유가 변화해온 모습을 더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20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원래 구유가 있던 자리는 정문 앞 도로였습니다. 알바트로스 광장으로 올라온 건 2015년부터예요. 외부 손님들이 많이 찾다 보니, 더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볼 수 있도록 높은 곳에 짓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사방이 뚫려 있는 형태로 디자인되었지만, 2001년부터 2010년 초반까지만 해도 벽면을 다 막았어요. 통나무의 겉부분인 피죽으로 벽을 둘렀으니 바깥에서 보면 통나무집처럼 보였습니다. 이러한 변화에도 사연이 있습니다. 2000년 처음 지었을 때는 지금처럼 벽 없이 골격이 강조되는 형태였는데, 누가 문틀을 넘어 들어와서는 아기 예수상을 훔쳐갔어요. 그 사건 때문에 경각심을 갖고 벽을 세웠다가, 사방에서 구유가 들여다보이는 게 더 좋아서 다시 벽 없이 지었습니다. 대신 보안장치를 마련해서 이전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없도록 대비했지요.

  


▲ (왼쪽부터) 사방이 막힌 형태로 지어진 2012년 구유, 도시의 판잣집을 형상화한 2013년 구유


▲ 2019년 구유의 찬란한 모습

  

 매해 달라지는 구유의 주제에 맞춰 구유 디자인도 변화합니다. '도시 빈민'이 주제였던 2013년에는 슬레이트 지붕으로 판자촌 느낌을 냈고, 2017년에는 아트&테크놀로지학과와 협업하면서 구유를 90° 회전하기도 했어요. 벽면에 미디어아트를 상영하기 위한 방법이었죠. 올해에는 개교 60주년을 기념하여 구유 뒤편에 '생명의 밤' 영상을 상영합니다. 영상에 집중할 수 있도록, 다른 소품 사용을 최소화하고 구유에 초점을 맞추어 제작했습니다.

  

  

구유 제작에 정말 열과 성을 다하시는 것 같습니다.


 지을 때마다 구유 디자인을 고민하고 여러 디테일을 시도합니다. 창틀을 십자로 달았다가 대각선으로만 바꾸어도 느낌이 확 달라져요. 구유 안쪽 뼈대를 보면 까맣게 그을려 있는데, 허름한 느낌을 내기 위해 직원들이 일일이 작업한 겁니다. 솥단지, 지게, 손수레 등 구유 앞의 소품도 매년 바뀝니다. 작년에는 서강 가족들의 소원 나무가 만들어졌는데, 아직도 이냐시오관에 보관되어 있어요. 구유 안의 여물통은 제가 직접 나무를 깎아 만들지요. 구유 구석구석 제 손길이 닿아 있습니다.
올해 구유의 포인트는 구유의 그을린 내벽과 지붕 위에 매달린 천사입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흥미로운 지점들을 발견하셨으면 좋겠어요.

  

  


▲ (왼쪽부터) 2020년 성탄 구유 제작 과정, 2013년 성탄 구유 제작 과정

  

  

서강대학교의 성탄 행사가 차장님께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20년간 구유를 제작하면서 인상 깊은 순간들이 참 많았습니다. 구유 지붕 위에서 바라본 서강대학은 참 아름다워요. 그 시간, 그 자리에서의 캠퍼스 모습을 아는 사람은 학교에 저뿐일 겁니다.
성탄 구유는 어느새 서강대학교의 명물이 되었습니다. 서강 가족 외에도 많은 분들이 찾아와 주시고, 포털 사이트에서 화제가 되기도 해요. 그런 모습을 보면 괜스레 뿌듯하고 자랑스럽습니다.
오랜 세월 일하면서 서강에 정이 많이 들었고, 그래서 언제나 학교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싶습니다. 요즘은 목재와 병충해에 관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방역을 담당하다 보니 병충해 예방에도 관심이 생기더군요. 열정 가득한 서강에서 앞으로도 폭넓게 공부하고 일하고 싶습니다. 서강 가족 여러분께서도 성탄의 축복 속에 건강하기를 바랍니다.

  

  

  

 # 서강 구유의 메신저, 교목처장 김상용 신부를 만나다      

  

  

 서강대학교는 예수회 학교로서 수많은 교내 행사에 축복식을 진행한다. 이러한 의식은 전부 교목처에서 주관한다. 김상용 아트&테크놀로지 교수는 올해부터 교목처장을 맡아 서강의 곳곳에 은총의 목소리를 전했다. 그 어느 때보다 힘겨웠던 2020년, 그의 따스한 위로는 서강 가족들의 가슴에 감동으로 울린다. 올해 구유 주제 선정과 영상 제작에 참여한 김상용 교목처장으로부터 2020년 성탄 구유의 의미를 들어보았다.

  


▲ 김상용 교목처장

  

  

반갑습니다, 교수님. 올해 구유의 테마인 '생명의 밤'은 어떤 의미인가요?


 '생명의 밤'이란 우리의 생명력을 앗아간 코로나19의 위협으로부터 하루빨리 벗어나, 생명력 넘치는 생활로 돌아가고자 하는 기원입니다.
'밤'은 암울한 어둠의 상징인 동시에 새벽을 기다리는 희망의 시간입니다. 잠시 머물러 있는 일상은 절망이 아니라 새벽녘에 동틀 태양을 기다리는, 고요하고 경건한 인고의 과정이겠지요. 이렇듯 생명을 꿈꾸고 생명을 잉태하는 밤은 생생한 존재로 화하기 전 마지막 고비입니다.
서강의 모든 구성원들은 한 해 동안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엄중한 사태를 겪어냈습니다. 지치고 피로했을 그들에게 성탄 구유를 통해 다시금 생명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성탄절은 생명의 소중함을 잃어버린 지상에 아기 예수가 새로운 생명으로 오신 날입니다. 가장 겸손한 모습으로 와서 가장 무한한 사랑을 실천하고 떠나신 예수 덕분에 우리의 삶은 모두 축복받았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께서 고통을 이겨내고 예수의 탄생을 기다렸듯, 우리는 '생명의 밤' 앞에서 반드시 움트고야 말 내일의 생명, 활기찬 생활을 기다리게 되는 것입니다.

  


▲ (왼쪽부터) 완성된 2020년 구유, 영상이 상영되는 구유 안

  

  

뜻깊은 주제가 매년 구유를 빛내고 있습니다. 이를 선정하고 구성하시는 과정이 궁금합니다.


 성탄 구유의 주제는 "한 해 동안 사람들에게 가장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교목처, 학생, 다양한 서강 구성원이 그 해의 사회정신을 반영하여 주제를 선정하지요. 2019년에는 학생 공모를 통해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위로를 전했고, 올해 주제는 교목처에서 선정하였습니다. 위로는 그리스도교에서 가장 중요한 하느님 은총 중 하나입니다. 성탄 구유의 목소리가 갖가지 노고와 피로에 시달리는 서강의 젊은이들을 위로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습니다.

  

  

서강의 색깔과 의미를 담은 성탄 구유 행사가 앞으로도 원활히 진행되었으면 합니다. 성탄 구유 행사에 관련하여 바라는 점이 있으신가요?


 이미 서강대학교의 구유는 신촌의 랜드마크입니다. 이 축복식이 유명세에 그치지 않고 본질을 드러내는 행사가 되도록 노력하려 합니다. 종교의 정신을 전하는 일은 그 정신이 가진 향기에 타인이 자연스럽게 이끌리도록 만드는 것이겠지요. 서강 구유 행사는 예수의 겸손한 사랑, 그 은은한 아름다움을 서강 가족들에게 전하고자 합니다.
고요하고 거룩한 성탄의 걸음이 서강의 젊은이들에게 따스한 돌봄으로 다가가기를 바랍니다. 청년 서강의 구성원 모두가 알바트로스 탑 위 빛나는 생명의 별을 향해 기쁜 찬미가를 부르는 날이 도래하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서강 가족 여러분에게 축복을 전합니다.

  

  

 성탄 구유의 메시지는 결국 찬란한 사랑의 마음이다. 구유를 만들고 의미를 불어넣는 모든 구성원의 마음은 구유 행사를 희망과 축복의 시간으로 승화한다. 이토록 따스하고 간절한 성탄 구유의 마음이 언제나 서강과 함께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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